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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불안에 위협받는 금융허브 홍콩…자산 엑소더스 본격화

방성훈 기자I 2019.08.19 16:16:30

홍콩 기업·부자 중심으로 자산 해외 이전…자금 이탈 우려
시위 발발 이후 유출 자산이 유입 자산 2.6배
홍콩달러 가치 하락+국제 금융허브 지위 흔들린 영향

홍콩 주민들이 18일(현지시간) 빅토리아공원에 모여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홍콩 소재 컨설팅기업 란타우그룹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새라 페어허스트(52)씨는 지난주 20만홍콩달러(약 3100만원)를 영국 파운드화로 환전해 집안에 뒀다. 11주째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어지가 불안감이 커진 때문이다. 12년전 홍콩으로 건너 온 그는 그는 사무실 인근에서 진압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페어허스트씨는 “너무 불안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 돈이 이 곳에 묶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간 지속되고 중국이 무력 진압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정치적 불안이 확산하면서 홍콩 주민들이 자국 화폐를 달러나 파운드화 등으로 교환하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홍콩달러 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다,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업들은 해외로 자금을 이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 개인들도 이미 환전을 마쳤거나 최소한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자치권을 계속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금융회사들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해외로 자금을 이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주식 및 부동산 시장에 하방 압력을 가하면서 추가적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매판매, 관광 및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의 신뢰도가 추락했고, 중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국제 금융 허브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에서 건축자재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밍 청(42) 사장은 최근 홍콩 내 부동산을 구매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미국 달러 보험상품에 400만홍콩달러 (약 6억2000만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사실상 자산을 달러로 바꾼 것이다.

청 사장은 “시위 발발 이후 시장을 믿을 수 없게 됐다”면서 “보험이 부동산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안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홍콩 달러는 페그제(고정환율제도)에 따라 1983년 이후 1달러당 7.75~7.85 홍콩달러 사이에서 고정됐다.

하지만 최근 통화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 17일엔 1달러당 7.8399달러에 거래, 페그제 상단을 위협했다. 이에 대해 미즈호은행의 켄 청 외환전략 책임자는 “환율이 오른 것은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는 징후”라며 “주가가 떨어지면서 일부 사람들이 해외로 돈을 옮기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업·개인들의 해외 자금 이전을 도와주는 트랜스퍼와이즈는 정확한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개월 전만 해도 홍콩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돈의 규모가 일정했으나, 시위 발발 이후 자금 유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으로 유출 자금이 유입 자금보다 2.64배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대부분 미국, 영국, 싱가포르, 호주 및 유로존 국가들의 은행 계좌로 흘러갔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소재 컨설팅업체 퓨처무브스의 데바다스 크리슈나다스 대표도 “부자들과 대기업 등 일부 고객들이 개인 자산 및 투자 자산을 모두 홍콩 밖으로 옮기고 있다. 시위로 인한 단기 우려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금융허브 지위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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