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산업 현장에서의 ‘중대재해’를 떠올리면 건설·제조업이 주된 대상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총 828명으로, 업종별로는 건설업(417명)·제조업(184명) 순이었습니다. 제조업 중에선 철강·화학·조선 등 대표적인 ‘굴뚝산업’들이 주요 타깃입니다. 현장에서 폭발사고의 위험이 큰 업종인 만큼 매년 근로자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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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의 여파는 비단 제조업만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게임 업계의 행보를 보면 그렇습니다. 국내 대표 게임사 3개사를 지칭하는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이 각각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 넥슨은 최근 안전보건 관리 영역을 협력사의 재해 예방까지 넓혔고 앞으로 전담 조직도 구성해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겠다는 방침입니다. 넥슨 관계자는 “현재 사내 안전보건계획 이사회 보고 및 승인 과정을 통해 전반적인 안전보건 관련 지속 관리에 나서고 있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을 통해 구성원들에게도 안전보건에 대한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엔씨소프트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을 통해 사내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하고, 전문기관에 자문을 받는 상황입니다. 현재보다 강화된 안전보건 확보 방안을 위한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넷마블 역시 사고 예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검토 및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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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게임 업체들의 행보가 의아스러운 시각도 있을 겁니다. 폭발 위험도 없고 현장에서의 사고도 없을 것 같은 게임 업계가 왜 이렇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 발 빠르게 나서는 걸까요. 산업재해의 범위를 약간 넓게 설정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단순 폭발 사고, 붕괴 사고뿐만 아니라 과로, 갑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현재는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고된 근무강도로 유명한 IT, 특히 게임 업계도 남의 일이 아니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 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2021)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 업계 종사자들 중 ‘건강상 문제가 있다’고 답변한 응답은 전체의 93.6%에 달했습니다. ‘이 같은 건강 문제가 업무와 관련돼 있다’는 응답이 88.8%나 됐습니다. 게임 업계에 만연한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기한을 지키기 위해 장시간 근무하는 행태)도 여전합니다. 특히 중소 게임사들이 더 심합니다. 지난해 5인 미만 중소 게임사 종사자 48.3%가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고, 이 기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도 61.4시간에 달했습니다.
‘과로로 설마 사람이 죽겠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있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앞서 2016년 게임 업계에 과도한 근무로 개발자들이 잇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당시 모 게임사의 20대 근로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2017년 정부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등 게임 업계의 과도한 근무량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3N 같은 대형 게임사들이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는 이유입니다. 주 52시간 제도 정착, 포괄임금제 폐지 등으로 과거에 비해 근무 환경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어두운 단면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 단위 매출 산업으로 성장한 국내 게임 업계가 중대재해처벌법의 파고를 넘어 건강한 근로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