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민정 기자] 디플레이션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 글로벌 경제 둔화로 인해 경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이 테러의 타깃이 되면서 테러 리스크가 유럽 경제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트리고 있다.
작년 11월 130여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프랑스 파리 테러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유럽연합(EU) 본부 등 EU 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으면서 유럽의 심장부로 통하는 벨기에 브뤼셀이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파리 테러 이후 유럽 각국이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갖가지 조치들을 취하고 안보 수준을 최고 수준으로 격상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충격은 더욱 크다.
◇EU 심장부 브뤼셀도 뚫렸다
이번에도 주범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 국가(IS)다. IS는 테러 직후 성명에서 “ 벨기에는 IS와 대적하고 있는 국제 동맹군 참가국”이라며 “우리 형제들이 자살폭탄 벨트와 폭탄을 품고 자벤텀 공항과 브뤼셀 지하철역에서 최대한의 죽음을 이끌어내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IS는 IS에 대적하는 모든 국가에 이같은 결과로 답했다”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결과는 더욱 참혹하고 끔찍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테러의 목적이 파리 테러 이후 안보 수준이 한층 강화된 유럽 국가 수도 조차도 테러에 쉽게 뚫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 극심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의 IS 본거지가 연합군 합동 공격 등으로 압박을 받자 주요 서구 국가의 수도를 공격하는 것으로 전략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번 테러가 지난 18일 벨기에 당국이 파리 테러 주범 중 한명인 IS 조직원 살레 압데슬람을 체포한 것에 대한 보복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EU 경찰 당국은 이번 브뤼셀 테러는 아주 오랫 동안 계획된 것으로 보여지고 압데슬람 체포가 범행을 가속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테러 참사 직후 국제사회는 발빠르게 단합했다.
쿠바를 방문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동맹이자 친구인 벨기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할 것”이라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 인종, 종교의 경계를 넘어 테러리즘과 맞서기 위해 세계가 하나로 뭉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시 테러 발생 직후 성명을 내고 “비열한 공격이 벨기에의 심장이자 유럽연합(EU)의 심장을 노렸다”면서 “테러에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즉각적인 법의 심판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 장관들은 24일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가인 네덜란드에서 만나 테러 대응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테러가 미 대선 변수 되나
테러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WSJ는 전 세계 곳곳에서 잊을 만하면 테러가 발생하면서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테러 대응 능력, 즉 누가 과연 미국을 테러에서 가장 잘 보호할 수 있을지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당장 민주, 공화당 유력 후보들은 테러 대응법 등을 쏟아내면서 표심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국경 봉쇄, 이민자 거부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던 공화당 대선 유력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테러 효과의 수혜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브뤼셀에 본부를 둔 미국-유럽 군사협력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쓸데없이 미국 재정을 잡아 먹고 있다며 미국의 분담분을 줄이고 유럽의 분담을 늘려야한다고 발언하면서 적잖게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공화당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브뤼셀 테러 직후 반테러 발언 수위를 더욱 높이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트럼프는 “국경을 통제해야한다. 잠재적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테러 정보를 미리 수집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합법적이 된다면 (체포한 IS 조직원 등에 대해) 물고문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토마스 라이트 연구원은 “공포 분위기에서는 트럼프의 권위적, 일방적 접근법의 호소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두려움에 빠진 국민들이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정책들을 지지하게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테러 직후 스탠퍼드대에서 예정에 없던 강연회를 열고 오바마 정권하에서 외교안보 분야 경험과 업적을 내세우면서 어필했다. 그는 “미국이 테러와 관련한 감시와 도청과 관련해 더욱 강경해 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