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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규 희망연구소 소장은 30일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12사단 을지부대 소속 장병들을 대상으로 열린 삼성그룹 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번 행사는 국군의 날을 앞두고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젊은 장병들을 격려하는 취지로 개최됐다.
이날 참석한 700여 명 장병들 앞에 멘토로 나선 서진규 소장은 가발공장 여공으로 출발해 미군 소령과 하버드대 박사를 거쳐 지금은 열정을 북돋는 ‘희망전도사’로 활약하게 된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를 소개했다.
서 소장은 1948년 가난한 술 장사꾼의 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진규는 크면 박사가 되라’ 말을 듣고 한 줄기 빛을 봤다. 이 말은 40여 년 뒤 서 소장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명령이자 약속이 됐다고 설명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발공장 직공으로 취직한 그는 미국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게 됐다고. 단돈 100달러만 쥐고 미국으로 건너간 후 서툰 영어로 가정부, 한식당 웨이트리스를 전전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이후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아 이제 ‘역경이 걷히나’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역경과 만나게 됐다. 매일 폭력을 휘둘러 대는 남편을 피해 찾아간 곳은 바로 군대였다. 미 육군에 자원입대한 그는 동양인이고 여자라는 이유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도전했고 최우수 훈련병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내 앞의 벽은 곧 내가 열어야 할 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후 서진규 소장은 장교로 임관, 소령까지 진급했다. 어릴 적 ‘박사가 되겠다’는 꿈은 여전히 잊지 않았다. 군 생활 중에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아 1990년 나이 마흔 둘에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2006년 박사학위까지 거머쥐었다.
수많은 역경을 마주하면서 서 소장은 ‘나 자신이 나의 가장 큰 동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너는 큰 인물이 되어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었던 것이 결국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의 열매를 얻은 원동력이었다는 것.
이어 서 소장은 “힘들다고 피하지 마라,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교수(정신과 전문의)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군 내 동료·계급 간 갈등에 대한 처방책을 제시했다. 그는 ‘관계의 단절’과 ‘공감 능력 부족’을 갈등의 원인으로 꼽았다.
신 교수는 “원만치 못한 관계,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의 원인은 바로 나의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며 “내가 편하지 않고 힘들어 죽는 상황에 어떻게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겠는가, 우선 나부터 행복해져야 한다”는 처방책을 내놨다.
신 교수는 내가 행복하면서 남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스트레스를 안고 가되 어떤 스트레스에도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맷집’(회복탄력성)을 만들 것,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시인의 감성’을 키울 것을 장병들에게 주문했다.
이번 열정락서에서는 함께 생활하고 있는 동료 장병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들의 열정을 응원하는 ‘열정히어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열정히어로’에서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극복하고 성악을 배워 ‘군악병’이 된 권오찬 상병, 미국 이민으로 주어지는 시민권 취득을 포기하고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 박대희 병장,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 쌍둥이로 동반 입대한 후 모범적으로 군 복무 중인 정진, 정완 상병의 사연이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