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F 2015] '국제시장' 윤제균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그게 기회였던 셈"

이윤정 기자I 2015.06.11 14:27:47
윤제균 영화감독이 1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 6회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WSF)’에서 ‘1000만 관객의 주인공이 전하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꿈’이란 주제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강민정 기자] 웃음과 박수갈채. 지루한 표정의 청중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운대’와 ‘국제시장’을 만든 윤제균 감독은 청중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윤 감독은 1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6회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WSF)에서 ‘1000만 관객의 주인공이 전하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꿈’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섰다.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갔다.

17년 전, 지갑에 1만원 한 장이 없었던 그다. 신혼 초 “당신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데 가장으로서 능력이 너무 부족해”라는 아내의 말에 아파했다고 한다.

2015년 현재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감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최초로 ‘쌍천만 감독’ 타이틀을 얻었다.

“어떻게 성공하셨어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윤 감독은 그 답을 ‘새옹지마’에서 찾았다고 했다. 오늘의 시련이 내일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됐다는 의미였다.

윤 감독은 “인생을 돌아보면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경제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때 아내와 헤어질 위기까지 갔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외아들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아내와 헤어졌다면 다시 결혼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돌아보면 지금의 성공을 만든 밑거름이었다. “돈이 들지 않은 일을 하려고 글을 쓰자고 생각했고, 처음 시나리오를 쓴 게 ‘신혼여행’이었는데, 우연히 보낸 공모전에 1위로 당선돼 상금을 받게 됐다”고 했다. ‘신혼여행’은 2000년 영화화됐다.

감독의 길에 접어들 때도 가족의 반대가 컸다. “내 집안에 딴따라가 웬말이냐”는 어머니의 타박을 들었고, “어차피 망할테니 1년 후에 돌아와라”며 사직서를 서랍에 두었던 당시 직장 상사의 안쓰러운 위로도 있었다. 그렇게 처음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이 ‘두사부일체’였다. ‘해리포터’와 같은 날 개봉했고, 한 주 뒤 ‘반지의 제왕’이 맞붙는 환경에서도 ‘두사부일체’는 350만 관객을 동원했다. 성공이었다. 청중들의 박수도 쏟아졌다.

준비 없이 아버지를 보내야 한 슬픔은 ‘국제시장’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국제시장’은 윤 감독이 아버지를 위해 만든 ‘헌사’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였지만 근현대사를 함께 한 모든 아버지와 자녀 세대가 공감하는 콘텐츠가 됐다.

윤 감독이 2009년 만든 ‘해운대’는 1132만4433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기준)의 관객이 봤다. 역대 흥행 순위 8위다. 지난해 개봉한 ‘국제시장’은 1425만7442명의 관객을 모았다. 흥행 순위 2위에 올라 있다.

‘영화인 인생’의 시작은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였다. 윤 감독의 시나리오를 원안으로 했다. 2001년 ‘두사부일체’를 시작으로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낭만자객’, ‘간 큰 가족’,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색즉시공’ 등 각본과 제작에도 참여하며 활동 범위를 넓혔다. ‘1번가의 기적’, ‘하모니’, ‘내 깡패같은 애인’ 등으로 코미디뿐 아니라 멜로와 휴머니즘 장르에도 감각을 발휘했다.

2011년 블록버스터 ‘7광구’는 제작자로서 역량을 자신한 작품이었다. 국내에선 기대에 못 미치다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선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후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댄싱퀸’, ‘스파이’가 연이어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국제시장’으로 영화감독 인생에 또한번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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