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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30일 오후 이춘식(94)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1명의 다수의견으로 1억원을 지급하도록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 판결 이후 6년 5개월, 파기환송심 판결 이후 5년 3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한일협정 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엔 이씨 등이 구하고 있는 위자료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씨 등이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게 아니다. 일본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과 관련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라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해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며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가 한일 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됐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 협상과정에서도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고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일제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권순일·조재현 대법관, 반대의견 “개인청구권 소행사 제한…한국정부가 배상해야”
이 같은 다수 의견에 대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한일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엔 이씨 등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해 가지는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됐다”며 “이씨 등이 일본 국민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소송을 제기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지금이라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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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귀국한 후 일본제철은 이후 이씨 등에 대해 급료·예금·퇴직수당 등을 합해 1인당 50~500엔을 공탁했다. 이후 일본의 전후 재건 과정에서 1950년 4월 해산돼 4개 회사로 분할됐다. 이중 한 회사는 1970년 상호를 신일본제철로 변경하고 다른 회사 한 곳을 합병했다.
여운택·신천수씨는 1997년 12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임금지급과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오사카지방재판소는 2001년 3월 청구기각 판결을 선고했고, 오사카고등재판소와 일본 최고재판소도 각각 2002년 11월과 2013년 10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여씨와 신씨는 이씨 등 3명과 함께 2005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각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여씨와 신씨에 대해선 “일본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될 수 없다고 할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된다”며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돼 종전 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본안에 관해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기각 판결했다.
나머지 3명에 대해선 강제징용이 국내법을 위반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고 한일협정에 의해서도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도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을 승계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덧붙여 청구권 시효 역시 한일협정 당일(1965년 6월22일)로부터 10년 이후 소멸됐다고 판단했다.
◇대법, 2012년 하급심 판결 파기하고 전범기업 배상책임 인정 판결
하지만 대법원 1부(재판장 김능환 대법관)는 지난 2012년 5월 하급심 판단을 뒤집고 이씨 등에 대한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당시 ‘외국법원 확정판결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217조 3항을 근거로 일본 법원의 확정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일본 법원 판결의 이유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 인식을 전제로 해,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이씨 등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 명백해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을 승계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일본법이 아닌 한국법을 적용해야 한다면 이 경우 두 회사 간 동일성이 유지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아울러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해서도 “한일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해 양국 정부의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개인청구권이 유지된다고 결론 냈다. 또 “이씨 등이 2005년 2월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며 하급심의 시효완성 판단도 뒤집었다.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은 2013년 7월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 취지에 따라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재상고된 사건을 통상적인 사건과 달리 무려 5년 넘게 심리했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는 와중에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의 장기 심리 배경에 박근혜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 조사 결과 박근혜정부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불만을 드러내며 대법원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일협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체결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시 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2013년 말과 2014년 하반기 당시 법원행정처장(차한성·박병대)을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판결 결과에 대해 논의했고 여기엔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이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은 그렇게 5년 넘게 이어졌다. 이를 두고 상고법원에 총력을 기울이던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정부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한 카드로서 강제징용 재판을 활용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현재 이 같은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강제징용 사건의 재판거래 의혹도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