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2번째다. 국유단 창설 이후 결사유격대로 참전한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윤식 씨는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아버지를 찾기 위해 육군본부 등 전국 각지를 돌아 다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어머니는 홀로 저를 어렵게 키우시다 1973년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제라도 아버님의 유해를 찾아 만나 뵐 수 있어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故 한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결사유격대원으로 참전, 적 총탄에 전사
고인은 1930년 경북 경주시 산내면 의곡리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0년 3월 결혼 후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던 중 1951년 1월경 21세의 젊은 나이에 경주 본적지 마을에서 친구들과 함께 징집돼 육군 직할부대 결사유격대에 입대했다.
故 한 일병은 6·25전쟁 기간인 1951년 1월 육군 정보학교 입소 후 육군직할 결사유격대 13연대에 배치됐다. 1951년 2월 초 북한군 후방지역으로 침투하기 위해 부산으로 이동했지만 폭풍우로 2일간 대기한 뒤 상륙 작전용 함정을 이용해 강원 삼척 묵호항에 도착했다. 결사유격대 대원들은 최종 목표인 강원도 어은산을 향해 침투하던 중 북한군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 정선군과 양양군을 피해 중간지역인 인제군 쪽으로 침투했다. 故 한 일병은 1951년 2월 15일 인제군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서 야간에 주로 활동하면서 빨치산을 공격하던 중 적의 총탄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故 한 일병의 유해는 2016년 11월 8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저항령에서 수습됐다. 만년필, 안경, 구두 주걱이 달린 열쇠고리, 단추, 탄피 등의 유품도 함께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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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 일병의 유해를 찾은 사연도 화제다. 국유단 조사과에서 근무하는 서일권 탐사관(38)은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통해 유해소재 조사·탐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2016년 10월 탐사 예정 지역이 설악산 저항령 이었는데, 10월 중순 설악산에 눈이 내린다는 뉴스를 들은 서 탐사관은 습관적으로 저항령 날씨와 지형을 검색했다.
한 등산객이 백두대간 종주 중 저항령 정상부 너덜지대에서 배탈로 용변을 보다 지표에 노출된 유해를 목격했다는 글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 글을 서 탐사관이 확인한 것이다. 서 탐사관은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목격자의 연락처를 확보한 끝에 게시된 글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목격자의 증언을 확보했다.
국유단은 곧바로 현장탐사를 실시하고 암석 위에 노출된 머리뼈를 확인 후 암석틈 사이에서 팔뼈와 다리뼈 등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조사·탐사, 목격자 증언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 참여 절실”
또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 참여 중요성도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신원확인이 신속하게 이뤄진 이유 중 하나는 故 한 일병의 아들 한윤식 씨가 2014년 11월 경남 합천군 보건소에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뒀기 때문이다. 국유단은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법의인류학적 감식과 이미 확보돼 있는 유가족들의 유전자(DNA) 비교·분석을 통해 친족관계를 확인했다.
2014년 한윤식씨의 유전자와 2016년 11월 8일 발굴된 유해의 유전자가 부자 관계일 가능성이 높아 올해 5월부터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를 추가로 채취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동일 부자-형제-남매-손자(녀) 관계로 확인된 감정 결과를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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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국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대한민국을 목숨바쳐 지켜낸 호국의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