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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조동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29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자들과 오찬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장기적 시계에서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하락하는 추세에 있음은 명확하다”면서 “앞으로도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은 조 위원의 모두발언 전문이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 추세와 통화정책에 대한 함의>
1.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 추세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소위 ‘3저 호황’ 기간이라고 하였던 1980년대 하반기 이후 3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 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동안 아시아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단기적 부침이 있었으나, 장기적 시계에서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하락하는 추세에 있음은 명확합니다. 그리고 그 속도도 결코 완만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연평균 0.2%포인트, 즉, 5년이 경과할 때마다 1%포인트 정도씩 하락해 왔습니다. 1980년대 9% 내외에 이르렀던 성장률이 30년이 지난 요즘에는 3%를 하회하는 수준까지 하락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률 하락 추세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성장회계’는 그 원인을 생각해보는데 좋은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성장회계는 한 경제의 성장률이 궁극적으로 노동과 자본이라는 투입요소의 증가와 ‘총요소생산성’이라는 경제효율의 증가로 분해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경제의 지난 30년을 이와 같은 틀에서 생각해 볼 때, 대부분의 성장률 하락 추세는 투입요소의 증가세 둔화로 설명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향후 전망은 어떨까요? 우리 경제는 지난 30년간의 성장률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 과거의 역동성을 되찾아가는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현실적인 제약요건들을 감안할 때 그와 같은 낙관적 시나리오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인구 증가세 둔화의 근본 원인은 급속한 출산율 저하에 기인하고 있고, 자본축적 증가세 둔화의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의 자본축적이 개발시대를 거쳐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향후 10~20년간 노동인구로 진입할 유·청년층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상태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미래의 노동력 증가세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자본장비율 통계뿐 아니라 수많은 장치산업의 과잉설비 등을 목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빠른 자본축적을 통한 성장세 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기득권(보다 정확히는 ‘경제적 지대’, ‘Economic Rent’)의 양보 내지 포기를 수반하는 개혁이 필수적이며, 따라서 사회갈등을 유발합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개혁과 규제개혁, 노동시장 개혁, 금융시장 개혁, 기업 지배구조 개혁, 재정개혁 등 그 어느 하나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개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론에는 더없이 동의합니다만, 통화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갈등조정이 지극히 어렵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당위적 낙관론만 전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경제가 성숙해지면서 우리나라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세 또한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그 둔화 폭이 매우 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회갈등 혹은 이념갈등이 점차 첨예화되는 최근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된 굵직한 개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추정 결과는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2. 잠재성장률, 중립금리, 그리고 통화정책
그렇다면 통화정책으로 성장률 하락 추세를 반전 내지 완화시킬 수 있을까요? 불행히도 이 부분에 관한 한 통화정책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생각입니다. 물리적 비용이 크지 않은 통화증발을 통해 성장률을 항구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믿는 학자는 없습니다. 한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은 통화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총수요 측면이 아니라, 위에서 설명한 총공급 측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주류경제학의 오래된 결론입니다.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은 단기적인 경기변동 차원이지 장기적인 성장추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통화당국의 입장에서 성장률 하락 추세는 정책의 대상이라기보다 정책을 운용함에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주요 환경변화인 측면이 강합니다. 우선 성장률 평가의 준거가 되는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연간 3%의 성장률(분기당 0.75%)은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해석되었습니다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2% 내외 성장률, 유로지역의 1%대 성장률, 일본의 0%대 성장률이 먼 선진국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시대가 다가오고 있을지 모릅니다.
성장률 하락 추세가 금리 추세에 미치는 영향은 기준금리 조절을 통한 통화정책 운용에 더욱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 부분입니다. 1990년대까지 두 자리 수 금리는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만, 이제는 금리가 한자리 수 초반까지 하락한 상태입니다. 물론 최근의 저금리는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라는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금리가 하락 추세를 보여 왔다는 점은 분명하며, 최근에는 우리 장기금리가 미국과 거의 유사한 수준까지 하락해 있습니다. 이러한 금리의 하락 추세는 성장률 하락 추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급속한 자본축적에 따라 소위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하락하여 왔으며, 이는 자금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킴으로써 금리를 하락시켜 온 것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더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또한 자금수요자인 젊은 세대의 축소와 노후 대비를 위해 저축을 공급하는 장년층의 상대적 증가를 통해 금리를 하락시키는 추가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과거에는 상대적 저축부족에 기인한 두 자리 수의 높은 자금조달 비용에도 불구하고 수익률이 이를 상회할 것으로 기대되는 투자 기회가 많았으나, 이제는 낮은 자금 조달 비용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담보할 투자기회를 충분히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금리 하락 추세는 급속한 자본축적 시기를 거치고 저출산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발생한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시장의 펀더멘털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장기금리뿐 아니라 통화당국의 기준금리도 하락추세를 보여 왔습니다만, 이는 시장 환경의 변화에 통화정책이 적응한 것이지 통화정책이 시장금리의 하락 추세를 견인한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통화당국이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소위 ‘중립금리’(혹은 ‘자연금리’)가 하락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성장률을 평가함에 있어 잠재성장률 하락추세를 감안해야 하듯이 통화당국의 기준금리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중립금리의 하락 추세를 감안해야 합니다. 10년 전에는 3%의 기준금리가 인플레이션을 확대시키는 확장적 정책기조로 해석되었겠습니다만, 중립금리가 하락한 현재에는 오히려 긴축적인 정책기조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준거의 불확실성과 물가안정목표제
이상의 설명은 통화정책을 운용함에 있어 필요한 주요 준거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함의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의 사고를 체계화함에 있어 매우 유익한 지침을 제공하는 ‘잠재성장률’이나 ‘중립금리’는 직접 관찰할 수 없는 변수들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변수들에 대한 정보는 추정에 의존해야 하나, 그 추정치들이 추정방식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잠재성장률과 중립금리를 추정하지 않는 중앙은행은 없습니다만, 어느 중앙은행도 특정 추정치에만 의존하여 통화정책을 수행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에 걸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해왔던 선진국들과 달리 잠재성장률과 중립금리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경우 과거의 자료에 의존하여 추정된 결과를 현재 혹은 미래에 적용하는 데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통화정책은 어떤 변수를 준거로 수행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되는 것이 물가안정목표제입니다. 잠재성장률이나 중립금리와 달리 물가(보다 정확히는 인플레이션)는 직접 관찰할 수 있습니다. 특정 연구자의 특정 추정기법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투명합니다. 더욱이 물가는 성장률이나 금리와는 달리 장기적으로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변수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수년간 5%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거나 반대로 디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우리 국민은 누구를 탓해야 하며 누구에게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해야 할까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통화당국의 몫입니다. 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은 용어의 정의상 지속적인 화폐가치의 하락 혹은 상승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통화정책의 결과물입니다. 즉,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는 통화당국이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만 하는 정책목표를 투명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유용한 준거를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특히 잠재성장률이나 중립금리와 같은 핵심적인 거시경제 좌표들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우리 경제에서 투명하고 일관된 통화정책의 기본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물가안정목표제의 유용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물가안정목표제 하에서 통화정책의 준거가 되는 인플레이션은 매월 집계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니라 경제 내부에 기조적으로 흐르는 인플레이션입니다. 단기적인 물가 등락은 통화정책 이외의 여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통화당국은 매월의 물가지표 등락에 경직적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 한편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추출하고 이를 공표된 목표 수준에서 관리하고자 노력합니다. 이 부분이 ‘물가안정목표제’라는 명칭 앞에 ‘신축적’(Flexible)이라는 형용사를 추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조적인 인플레이션도 직접 관찰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물가안정목표제가 완전히 투명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준거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관찰 가능한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잠재성장률이나 중립금리와는 달리 경제환경이 변화해도 2%라는 일관된 목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4. 통화정책과 관련된 여타 논의와 물가안정
통화정책의 궁극적 목적이 물가안정이라는 점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며, 별다른 반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자 하는 이유는, 통화정책을 논의함에 있어 그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부분이 종종 간과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우리 통화정책에 대한 논의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타게팅이라는 통화정책의 기본 목적을 상기한다면,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미국의 통화정책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기 및 인플레이션 상황과 전망을 기초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즉, 미국은 미국의 거시경제 상황을 기초로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우리는 우리의 거시경제 상황을 기초로 우리의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세계경제와 우리 거시경제의 연계가 강화되고 있어, 결과적으로 미국과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이 동조화된 것으로 보이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거시경제 여건이 미국과 다르게 전개된다면 우리의 통화정책은 미국과 다른 모습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금리인상 그 자체보다, 금리인상을 유발한 배경(즉, 경기확장과 인플레이션율 상승 등)이 수출 및 환율 등을 통해 우리나라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변화가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전망해 가면서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인플레이션 타게팅이 함의하고 있는 바입니다.
통화정책은 경제 전반 구석구석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도 다양하고, 지극히 상이한 관점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논의의 다양성이 인플레이션 타게팅으로 대변되는 통화정책의 근본 목적을 희석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작년 말 ‘2017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서 공표된 통화신용정책 운영의 일반원칙이 물가안정목표제를 강조한 이유도 통화정책 결정 배경에 대한 시장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불필요한 혼란을 줄이고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5. 맺음말: 구조개혁과 통화정책
저는 오늘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 추세가 통화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어떤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축적 물가안정목표제(Flexible Inflation Targeting)가 현 시점의 우리 경제환경 하에서 왜 유용한 통화정책 프레임워크인지에 대해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성장률 하락 추세 반전을 주도하기 어렵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저의 인식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통화정책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 확산되고 있는 ‘통화정책의 유효성 저하’ 논의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으며, 여전히 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 실물경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통화정책의 신축성을 제한한 금본위 제도 하에서의 대공황 시절과 비교하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부정적 실물경제 파급이 훨씬 작게 나타날 수 있었던 배경에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있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다만 성장 지원과 관련하여 제가 오늘 강조하고자 한 논점은 보다 장기적인 통화정책 효과에 관한 것이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 통화정책이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로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의 급등락을 제어함으로써 개별 경제주체들에게 거시경제 관련 불확실성을 축소시키는 경로일 것입니다. 아울러 안정적인 거시경제의 유지는 구조개혁 내지 구조조정이 원만하게 추진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통화당국이 개혁추진의 주체가 될 수는 없으며, 통화정책만으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개별 정책당국은 그들에게 주어진 목적이 있으며,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각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위해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통화당국에게 있어 신축적 물가안정목표제는 그와 같은 목적에 잘 부합하는 제도라고 판단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3월 29일
조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