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관치도 디테일이 중요하다

정수영 기자I 2022.12.15 18:05:20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2000년대 초반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김석동 위원장은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금융관료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관(금융당국)이 민(시장)을 다스린다(치)’란 말로 해석돼 반발을 샀다. 그러다보니 ‘관치’는 시장에 불신이 가득한 행정 관료들의 시장 통치 방식으로 여겨졌다. 관치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의 행정기관이 직접 맡아 하는 행정’이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정부의 시장 개입이긴 하지만, 통치라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

요즘 금융권의 최대 키워드가 바로 이 ‘관치’다. 금융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관리하기에는 시장 상황이 너무 빠르게, 불규칙하게, 불확실하게 흐르는 경향이 강해 정부의 관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칫 관치를 잘못했다가는 시장에 혼란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예대금리차 공시제도가 대표적이다. 금융사들이 예금 이자는 안올리고, 대출 이자는 높혀 예대율마진을 늘리고 있다는 비난이 일자, 금융당국은 예대금리차 공시제도를 도입했다. 은행들이 강제적으로 예금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채권시장이 어려움을 겪자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 수요가 늘자, 당국은 은행에 ‘은행채 발행 자제 및 기업대출 확대’ 등 구원투수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 은행들이 예대금리차도 줄이고, 기업대출도 늘리려면 예금 등 수신금리를 올리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쓰디 썼다. 수신금리는 대출을 위한 조달금리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출금리를 끌어 올린다. 고객들이 은행에 맡긴 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려면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동시에 은행으로 자금이 몰리면 비은행권 자금은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영세한 제2금융권 유동성 위기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황한 당국은 뒤늦게 수신금리를 더이상 올리지 말라고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안일한 관치로 시장 혼란을 부추긴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게 올해 하반기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다. 강원도가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 발행한 부동산 PF ABCP(자산유동화 기업어음) 부도 위기에 몰렸는데도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거부하면서 지방채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졌지만 당국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와 관련해선 지난 9월부터 당국과 논의를 해왔지만, 시장 혼란을 예상치 못한 채 오히려 흥국생명 결정을 지지했다.

관치를 ‘다스리는 것’으로 해석하는 선민의식을 지닌 금융관료들은 인사개입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금융전문가란 그럴싸한 포장지를 씌우고, 주인 없는 금융그룹을 여러 방식으로 압박한 뒤 관료 출신을 앉히는 전형적 방법이다.

정부는 시장이 실패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적 ‘관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만 시장을 꼼꼼히 체크하지 못한 채 임기응변식 대처를 한다거나, 시장경제 시스템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인 압박으로 관치를 한다면 경제는 후퇴하고 말 것이다. 동시에 무리한 인사개입은 독이 될 수 있다. 교수협회가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다)를 잊지 말자.

회사채 대책 등 경제 및 금융 현안 회의에 모인 경제사령탑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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