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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은 원고지 35매 분량의 장문의 이임사를 통해 “최근 여가부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고, “그동안 의견을 드리고 싶은 여러 계기가 있었지만, 행정부 공무원으로서 후보의 선거공약이나 인수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간 여가부 폐지에 대해 소셜네트워크(SNS) 등에 간간히 의견을 내비치긴했지만, 작심하고 언론을 통해 의견을 내긴 처음이다.
우선 여가부 폐지 추진 논리가 미흡하다는 것이 정 장관의 지적이다. 그는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구조적 차별은 없다’ 외에 더 상세한 관련 근거나 추가 설명은 찾기 어렵다”며 “지난 20년간 유지되어 온 정부 부처의 폐지를 주장하려면 그 이유나 문제점, 한계, 대안이라도 제시돼야한다”고 역설했다.
여가부의 실책에 대해서도 “지난 기간 동안 여성가족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족하거나 잘못 대응한 일도 있었지만, 기회가 되는대로 바로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여성가족부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왜곡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해 왔다”며 “그럼에도 그러한 부족함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거나, 여성가족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적절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가 ‘젠더 갈등’을 유발하고 확대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도 “‘젠더 갈등’이라는 이슈는 원인 진단이 잘못된, 정치적으로 확산된 것일 뿐 아니라, ‘흑백 갈등’이나 ‘장애인과 비장애인 갈등’처럼 구조적 차이를 무시한 불편한 용어”라며 “또한 많은 청년들이 제기하는 주거 및 일자리의 문제, 징병제 및 군대 내의 처우과 관련된 문제들은 젠더 이슈로 수렴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가부의 존재 의의에 대해 “정부의 한 부처로 여성가족부가 존재한다는 것은 연관된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중요한 정부의 과제로 간주하며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국가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 100여개의 국가들이 성평등 추진부서를 통해 성평등뿐 아니라, 그 사회의 삶의 질, 행복도, 지속가능성 등을 확보함으로써 진정한 선진사회로 발돋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도 역설했다.
아직 한국사회는 성평등 추진부서의 필요성이 남아있다는 것이 정 장관 주장이다. 그는 “일가족 양립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긴 노동시간,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는 M자형의 연령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나 선진국 중 가장 큰 성별임금격차, 여전히 낮은 고위직 여성비율, 반대로 점차 확대되는 다양한 성폭력의 위험 등 여러 심각한 구조적 어려움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여가부를 사실상 배제했다며 그간의 과정을 들춰 성평등 정책의 후퇴를 우려했다. 정 장관은 “이번 인수위원회 기간 내내 여성가족부 업무에 대한 보고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는 극도로 제한적이었다”며 “인수위 110개 국정과제에 여성가족부가 단독주관부처인 과제는 하나도 없으며, 성평등 정책 총괄부서로서의 업무는 실종되고, 여성권익업무는 법무부가 주관부처로, 여성고용 관련 업무는 노동부가, 청소년업무는 요보호청소년 업무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수위원회 두 달 동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중앙과 지역 여성계 및 정책대상자들이 성명, 토론회, 면담 등을 통해 제시한 다양한 요구와 제안, 호소 등은 거의 반영되지 못한 것 같다”며 “그동안 여성가족부가 대상으로 삼아왔던 국민들은 고려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그동안 여성가족부가 추진해 온 여성폭력피해자 보호나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과 관련된 업무들이 부처 설립의 목적, 업무전달체계가 다른 타 부처에서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목표로 해왔던 (성)평등과 통합, 배려의 가치는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여가부 존폐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제적 기준과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확대된 예산과 조직, 권한을 통해 보다 실행력을 갖춘 여가부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