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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은 원래 금융안정이 더 중요했다는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전형적인 ‘매파(금리 인상 선호)’였다. 그러나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금융안정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매파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초 창립기념사를 통해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금리인하를 시사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고승범 위원은 3일 서울 태평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앞서 이주열 총재도 “적절한 대응”을 강조한 바 있다. 매파성향의 위원들 사이에서 우리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고 위원은 우리나라의 높은 가계부채를 고려해, 통화정책을 펼 때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은 국제결제은행 경제학자인 체케티와 잠폴리의 계량분석 연구(2011년)를 인용하면서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채 임계치가 정부부문 신용이 85%, 기업신용이 90%, 가계신용이 85%”라고 소개한 뒤 “우리나라 민간신용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에 육박하는 등 가계부채 수준이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완화적 통화정책의 장기화는 자산가격 버블로 이어지고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 “과도한 신용공급은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일 수 있고, 금융안정도 해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한다”며 “통화정책이 미치는 영향도 상당히 큰 만큼, 통화정책 수립시에도 단기적 안목이 아닌 중기적 안목을 갖고 고려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부채는 비만과 비슷하다”며 비유를 들고 “비만관리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고, 꾸준히 해야하는 성격의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당장 실물 경제가 둔화하고 있고, 한가지 정책수단으로 상반된 정책목표(금융안정, 물가안정)를 추구해야하는데 대해 “(최근 경기와 저물가가) 신경이 많이 쓰이면서, (통화정책방향 결정과 관련해) 상당히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통화정책 수립과정에서 금융안정을 고려해야한다는 주장이 거시경제정책인 통화정책이 경기와 물가 상황을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도 했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과 관련해 고 위원은 “정부도 하반기 경제 전망을 낮췄고, 수출은 물론 설비투자 여건이 안좋은데다 현재 0%대 물가도 경제성장률이 낮아 수요 측면의 물가 하방 압력이 있는 점은 (통화정책결정에) 고려해야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어느정도 무르익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하반기와 내년 경제전망,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방향, 미·중 무역분쟁 전개 방향이 우리수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보고 판단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연준보다 앞서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연준이 이달 금리를 내릴지는 두고봐야하고, 우리가 연준과 일대일 대응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당장 자본유출을 걱정할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차가 더 벌어지더라도 차익거래요인 등으로 자본유출 우려가 적은 만큼 연준보다 선제적 금리인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