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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이다. 판소리는 1명의 소리꾼이 고수(鼓手)의 장단에 맞춰 오직 소리로만 1인 다역을 소화하는 게 특징. 반면 창극은 여러 명의 소리꾼이 각자 배역을 맡아 소리는 물론 연기, 때로는 노래와 춤까지 선보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립창극단은 ‘창극의 대중화’라는 기치 아래 전통을 넘어 다양한 소재로 창극의 외연을 확대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왔다.
올해 국악 공연시장을 견인한 것 또한 창극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국립창극단이 올해 무대에 올린 ‘정년이’, ‘베니스의 상인들’, ‘심청가’ 등이 올해 3분기까지 국악 공연 티켓판매액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정년이’는 웹툰을 소재로 한 첫 창극으로 기존에 국악 공연을 자주 찾지 않던 20~30대 관객의 지지를 받으며 창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근 막을 내린 ‘패왕별희’ 또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창극의 인기를 다시금 증명했다.
창극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국립창극단은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동시대 관객과 더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차세대 창작진인 작창가 발굴과 양성이다. 작창(作唱)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국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극의 흐름에 맞게 소리를 짜는 작업을 의미한다. 작창은 창극의 정서를 이끄는 핵심 요소이자 창극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창극의 발전을 위해선 작창가 발굴과 육성이 필요하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베니스의 상인들’ 등의 소리를 맡았던 한승석(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은 “이제 창극은 작품마다 흥행을 거두고 팬층도 두꺼워지면서 유사 이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창극이 지금보다 더 탄탄한 내실을 갖춰야 하며, 그 핵심은 바로 ‘작창’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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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은 2022년부터 ‘작창가 프로젝트’를 도입해 신진 작창가를 발굴, 육성하고 있다. 이번 시연회에서는 지난해 선발된 이연주(45), 이봉근(40), 강나현(29), 신한별(24)이 올해 약 10개월간 이뤄낸 창작 결과물을 공개하는 자리다. 이연주는 국립창극단 대표 중견 배우이며, 이봉근은 영화 ‘광대 : 소리꾼’의 학규 역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국악인이다. 강나현은 창작판소리 단체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동인이고, 신한별은 현대적인 작곡에 능한 신예 음악가다.
이들은 각각 극작가 이철희, 김도영, 진주, 윤미현과 짝을 이뤄 신작 창극을 30분 분량으로 선보인다. 동화와 설화를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이연주·이철희는 동명의 동화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금도끼 은도끼’를 통해 치열하게 살아도 ‘인생 한 방’에 뒤처지고 매사 제자리인 비정한 사회를 풍자한다. 이봉근·김도영은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를 새롭게 풀어낸 ‘두메’를 선보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원작인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도 창극으로 재탄생한다. 강나현·진주는 안데르센의 동명 동화를 재구성해 진정한 사랑의 방식과 영원의 의미를 질문한다. 신한별·윤미현은 전래동화 ‘도깨비감투’에서 모티브를 얻은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를 시연한다. 쓰기만 하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감투를 ‘쫄쫄이 댄스복’으로 개조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국립창극단은 ‘작창가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작창가를 발굴하는 동시에 우수 작품은 새로운 레퍼토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유은선 국립창작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작창가 프로젝트’의 지난해 첫 성과를 통해 재능 있는 젊은 창작자들이 작품에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창극 제작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라며 “창극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확장을 위해 작창가 외에도 작가·연출가 등 여러 분야의 차세대 예술가를 꾸준히 발굴·양성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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