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이데일리 김대웅 특파원] 국정농단 사태만으로도 전례없는 혼란에 빠져있는데 최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그에 따른 중국의 보복 행위가 더해지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닌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확산하는 중국의 보복과 우리 정부의 무대책, 언론의 자극적 보도 등이 어우러져 국민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하지만 감정적 대응은 결국 문제를 키울 뿐이다. 특히나 이러한 국민감정이 결부된 중차대한 외교적 문제에 있어서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가 다른 어떤 사안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을 때다. 5년 전 유사한 일을 겪은 일본의 대응방식도 참고해 볼 만하다.
중국이 현재 치졸한 보복에 나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가 나서 여행사들을 향해 한국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리거나 롯데마트에 대해 소방법 위반 등을 이유로 줄줄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행위를 보면 이 나라를 과연 대국이라 부를 만한가 싶다. 한국인으로서 분노도 끓어오른다.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불편한 점이 여간 많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근에는 외출시 중국인이 많이 모여있는 곳을 지날 때면 괜히 뒤통수가 뜨끈해 오기도 할 지경이다.
기자 역시 키보드 워리어가 돼 SNS에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욕을 있는대로 퍼붓고 싶기도 하고 당장 한국으로 들어가 ‘짱깨 아웃’이란 팻말을 들고 1인시위라도 하고픈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차분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바로 이러한 감정적 대응이 아닐까 한다. 주위 반응을 봐도 중국 현지로부터 전해져 가는 소식들에 한국 지인들은 일제히 분노하며 반중(反中) 감정이 형성돼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내에서도 반한(反韓)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양국간 감정 싸움이 격화될 경우 아마도 폭력사태 등 각종 비이성적 행위가 속출하고 이를 바라본 상대국의 시민들은 더욱 분노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사드가 실제로 배치되고 나면 중국 반발도 잦아들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이는 순진한 기대라고 일축한다. 오히려 외교적 군사적 압박으로 확산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무사안일론을 폈던 국내 일각의 주장보다 계속해서 사드 보복을 우려해 왔던 현지 전문가들의 경고에 이제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드의 효용이나 사드 배치 필요성 또는 중국 보복의 부당성 등을 모두 떠나 현재 벌어진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는 관점에서만 봤을 때 우리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사드 관련 옐로저널리즘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미확인된 추측성 자극적 보도가 난무하며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작금의 현실은 분명 달라져야 한다. 사드보복은 중국의 무덤이 될 것이라던가, 한국을 때리면 중국도 아플 것이라던가, 비어가는 명동을 태국인으로 채우면 된다는 식의 감정적 여론몰이도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론 생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신중하고 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손바닥 안에서 전세계 소식을 접하는 시대다. 한국내 높아진 반중감정은 고스란히 중국내 반한감정 고조로 이어지게 된다. 당장 7일자 중국 관영 환구시보 사설만 봐도 그렇다. 이 신문은 ‘중국이 3류국가라면 한국은 몇류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 주요 매체들이 중국을 공격하며 제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매체명을 거론하며 그들의 사설 내용을 인용했다. 국가간 신문사설을 통해 감정 싸움이 벌어지는 양상까지 온 것이다.
2012년 센카쿠 분쟁으로 중국으로부터 고강도의 보복을 당한 일본은 당시 감정적 대응을 최소화하고 차분한 대응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최대한 냉정하게 이 문제를 대하며 사실관계를 정확히 전달하고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는 논평에 집중했다. 일본의 대표적 보수언론인 산케이마저도 “침착함 속에 중국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쓰지 않았다”는 한 일본 유력언론인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언론이 흥분하면 여론을 호도하게 되고 문제 해결은커녕 그 반대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