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달 28일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한결원)을 겨냥해 법적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이에 한결원은 서울시의 ‘책임 떠넘기기’라며 반발했습니다. 한결원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법적 대응을 할 경우, 법적으로 맞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법적 분쟁이 불가피합니다. 업계에선 뒷말이 무성합니다. 오세훈 시장은 왜 제로페이와 싸우는 걸까요?
|
◇자료 일체 넘기라는 서울시, 곤혹스런 제로페이
이번 사태는 오 시장이 취임한 뒤 서울시가 지역화폐인 서울사랑상품권의 운영사업자를 변경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시 서울사랑상품권 운영사업자로 선정된 한결원은 작년 12월31일자로 협약 기간이 종료됐습니다. 대신에 서울시는 공모를 통해 신한카드, 신한은행, 티머니, 카카오페이 등 4곳이 참여한 신한컨소시엄을 새 판매대행점으로 선정했습니다. 판매대행점을 바꾸면서 상품권 구매·결제도 ‘서울페이플러스(+)’ 앱으로 통합했습니다.
문제는 서울페이+가 적용된 지난달 24일부터 불거졌습니다. “결제가 안 돼 분통이 터진다”, “도둑놈 취급 받았다”는 민원이 쇄도했습니다. 지난 24~27일 나흘간 제로페이 고객센터 등에 서울사랑상품권 결제 장애가 발생했다는 민원이 3884건에 달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제로페이 QR 코드를 찍은 소비자들이 주로 결제 장래를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사랑상품권 10만원을 구입한 A씨는 제로페이 가맹점에서 물건을 산 뒤 자신의 스마트폰의 제로페이 앱으로 상점에 설치된 기기에 QR 코드를 찍었습니다. 이후 A씨 폰에는 상품권 결제 완료 정보가 뜹니다. 그런데 상점 주인인 가맹점주의 스마트폰 등 기기에는 표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결제가 됐다고 하고, 가맹점주는 결제가 안 됐다며 양측의 실랑이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는 제로페이가 차단됐기 때문입니다. 전국 139만곳에 달하는 제로페이 가맹점에서는 A씨 사례처럼 서울페이+ 앱이 연동되지 않습니다. 가맹점주는 결제 표시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맹점주가 QR로 결제된 내역을 확인하려면 서울페이+ 앱을 새로 다운로드 받아 설치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결제 방식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가맹점 측에서도 ‘서울시가 미리 제대로 공지를 했어야 하지 않나’, ‘번거롭게 앱을 또 깔아야 하나’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서울시는 한결원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28일 “(한결원이) 가맹점에게 안내할 수 있는 핵심정보인 가맹점 식별번호, 대표자 고객번호, 대표자명, 대표자 전화번호 등을 제공하지 않아, 시민에게 충분히 안내하기 어려웠다”며 “가입자 일체 자료를 서울시에 제공해 줄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결원이 보유하고 있는 제로페이 가맹점 주요 정보를 이번에 모두 넘기면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서울시는 서울시(발행기관), 한결원(가맹점 운영사), 비즈플레이(판대대행점) 협약에 따라 자료 일체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협약 등에 대한 법률 자문 결과 한결원에 위탁을 맡겼을뿐 가맹점 데이터 주인은 서울시”라며 “서울시가 자료 일체를 요구했는데도 위탁사업자인 한결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제 장애가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한결원 입장은 다릅니다. 한결원은 지난달 28일 “법률 검토를 거쳐 서울시에 제공 가능한 가맹점 정보 전부를 이관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결원 관계자는 “가맹점주 전화번호 등을 제공하려면 가맹점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제로페이 참여 기관에만 가맹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데 신한컨소시엄의 카카오페이는 참여 기관이 아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자료 일체를 제출하면 한결원이 개인정보보호법 및 제로페이 참여기관 공동규약을 위반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기존에 쓰던 제로페이를 연동하는 게 가장 간단한 해법입니다. 가맹점주들이 앱을 새로 깔지 않아도 되고, 소비자들도 쓰던 대로 쓰면 되니까요. 한결원은 이 같은 불상사가 우려돼 제로페이 QR 또는 앱을 활용해 연동하는 방안을 작년부터 서울시와 신한컨소시엄에 수차례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달 20일 “제로페이와의 연동 결제를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한결원에 최종 통보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로페이와 연동하려면 가맹점주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관련 시스템 개발까지 하려면 2~3개월이 더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는 신한컨소시엄 고객센터 직원들이 향후 2주간 가맹점(서울 27만곳)에 개별 연락을 해 서울페이+ 앱 설치를 안내하고 독려하기로 했습니다.
|
◇오세훈 선택은? 마이웨이냐 상생이냐
법적 쟁점도 이슈이지만, 업계에선 속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서울시-신한컨소시엄과 한결원은 체급 차이가 커 ‘다윗과 골리앗’ 싸움 같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한결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까지 엄포를 놓는 속내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선 두 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박원순 지우기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가맹점과 소비자들이 잘 쓰고 있던 제로페이와의 연동을 거절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로페이는 박원순 전 시장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을 낮추겠다’며 제로 수준의 수수료 공약을 낸 뒤 출시됐습니다. 만약 한결원이 가입자 일체 자료를 넘길 경우, 제로페이 서비스 경쟁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제로페이가 사라지면 박원순 전 시장의 공약도 사라집니다.
둘째로는 데이터 전쟁입니다. 서울페이+ 앱을 운용하는 신한컨소시엄에는 신한카드·신한은행·카카오·티머니가 참여 중입니다. 신한카드·신한은행·카카오(035720)는 지난달 시행된 마이데이터에 공을 쏟고 있습니다. 마이데이터는 흩어진 개인 신용정보를 모아 보여주고 금융상품 등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입니다. 마이데이터 경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고객 데이터’ 확보입니다.
신한컨소시엄의 입장에선 제로페이 참여기관으로 들어가 한결원과 데이터 공유를 하기보다는 독자적인 데이터를 구축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제로페이와 연동하지 않고 데이터를 받아내면 ‘남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한결원 입장에선 곤혹스럽습니다. 제로페이가 2018년 12월 출시된 뒤 우여곡절을 거쳐 가맹점을 늘리고 3년여간 데이터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신한컨소시엄이 날로 먹으려고 하느냐’라는 푸념이 나올 정도입니다. 거대 금융기관, 빅테크가 소상공인 결제 시장도 잠식할 것이란 주장도 합니다.
설 연휴가 지나면서 이 싸움은 더 격화할 전망입니다. 서울시는 한결원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데드라인을 2월3일로 정했습니다. 한결원은 “줄 수 있는 자료는 이미 줬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법적 분쟁이 예상됩니다. 서울시와 신한컨소시엄은 예정대로 강행할 전망입니다. 한결원은 제로페이와 연동 없이 서울페이+ 앱이 활성화될수록 존폐 위기에 처할 수 있어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양측이 부딪힐수록 모두가 피해자가 됩니다. 한결원에 민원이 계속 쇄도할수록 제로페이 이미지만 나빠지게 됩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무력화나 대형기업이나 은행 도우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논란도 여전합니다.
논란이 커질수록 신한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맹점주들은 앱을 새로 깔아야 하는 등 번거롭게 결제를 해야 합니다. 소상공인들이 불편할수록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부담도 커집니다. 앞으로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서울시민 입장에선 고통스런 일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3일 이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과거 무상급식 논란 때처럼 마이웨이로 갈지, 아니면 이번엔 융통성 있게 쟁점을 풀어나갈지가 관심사입니다. 오 시장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