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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상영된 ‘이춘재 8차사건’ 재심 첫 공판

이용성 기자I 2020.05.19 14:59:48

수원지법, 19일 ''이춘재 8차사건'' 재심 개시
범인 지목 윤모씨, 20년간 옥살이 후 재심 신청
재판부, 현장 체모 2점 압수수색 영장 발부

[수원=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며 2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모(53)씨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열렸다. 당시 수사기관이 윤씨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핵심 증거 여럿을 조작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법정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이 일부 상영되기도 했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복역한 윤모씨가 재심 첫 공판 출석을 위해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재판장 박정제)는 19일 수원시 영통구 하동 청사에서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윤씨를 범인으로 검거해 강간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형됐다가 20년을 복역한 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지난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이춘재로 밝혀진 후 윤씨 측은 지난해 11월 수원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다음달 검찰도 이 사건의 재심 필요성을 인정, 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하면서 재심이 본격 이뤄지게 됐다.

◇검찰“국과수 감정 오류 있어…진위 여부 밝혀야”

이날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간 특별한 이견은 없었다. 이미 이춘재가 8차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자백했고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에서, 재심 목적이 ‘실체적 진실’ 확인과 윤씨의 명예회복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경찰의 불법체포·감금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오류를 지적했다. 검찰은 “경찰이 윤씨 연행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서 구속영장 집행 전까지 사실상 감금을 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어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데 가장 강력한 근거로 쓰인 방사선 동위원소 수치를 봤을 때 범인과 윤씨가 동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면서 “원 판결의 증거가 된 국과수 감정은 허위이며 당시 수사했던 경찰을 증인으로 채택해 진위 여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 측, 영화 ‘살인의 추억’ 틀며 당시 수사 지적

윤씨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 주장에 살을 붙였다. 이춘재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법정에서 재생하며 당시 불법체포·감금, 조서 허위 작성, 위법 현장 검증 등을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한글 작성을 어려워한 윤씨가 조서를 문제 없이 썼는데 이는 경찰의 목적이 담긴 왜곡된 허위 조서”라고 강조했다.

또한 “윤씨가 담을 넘었다는 당시 경찰의 수사 기록이 있는데, 다리 장애 때문에 담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장 검증 때도 윤씨가 담을 넘는 사진이 없었다”고 밝혔다.

사건 현장에 있던 범인의 족적이 조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당시 피해자 아버지 박모씨는 사건 현장에 희미한 운동화 자국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박 변호사는 “윤씨 검거 후 피해자 아버지의 진술이 ‘운동화 자국’에서 ‘맨발’로 바뀌었다”며 “제대로 범인을 잡아서 한을 풀어줘야 하는 피해자 아버지의 진술까지 왜곡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 유족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첫 공판이 끝나고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과 만난 윤씨는 “앞으로 잘 되지 않겠나 (재판 과정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공판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판 막바지에 이춘재의 증언이 필요하다”면서 이춘재를 증인으로 법정에 부를 것을 시사했다. 재판부는 이춘재의 증인 채택 여부 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던 체모 2점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체모와 윤씨의 체모를 확보해 다음 공판기일까지 압수물과 관련 조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다음 공판기일은 6월 15일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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