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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복수의 소식통과 이란 고위 관계자들에 확인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지난 4월 17일 칼리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국방부 장관을 이란 테헤란으로 보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도록 했다. 칼리드 장관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동생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동에서 이란 측에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모하마드 바게리 합참의장, 아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이 배석했다.
칼리드 장관은 이란에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 협상을 용납하지 않는 성향임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신속한 합의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7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란과의 직접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전격 발표한 이후 이뤄진 조치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 지원을 기대하고 워싱턴을 찾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미국과 이란 간의 직접 협상 개시를 발표했다.
칼리드 장관은 중동 지역에서 확전을 우려하며 “이미 가자지구와 레바논의 전쟁으로 피폐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충돌은 감당할 수 없다”며 이란에 핵 협상 복귀를 촉구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외교관계를 정상화했지만 수십 년간 대립해왔기에 양국 간 신뢰는 여전히 낮다. 이번에 사우디 왕족이 이란을 방문한 것은 20여년 만이라고 로이터는 짚었다.
이란은 이번 사우디와 비공개 회동에서 “경제제재 해제를 위한 합의를 원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협상 태도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미국이 일부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겠다 했다가 전면 해체를 요구하는 등 일관성 없는 입장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합의는 원하지만, 우리의 핵 농축 주권은 포기할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칼리드 왕자는 이란과 회동에서 사우디 아람코 석유시설에 대한 2019년 드론 공격을 언급하며, 이란을 주축으로 하마스(가자지구), 헤즈볼라(레바논), 후티(예멘) 등 ‘저항의 축’의 추가 도발이 미국을 자극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의 대응은 오바마나 바이든과 달리 훨씬 강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사우디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자국 영토나 영공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의 안보 우려도 일부 달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은 사우디가 이란에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는지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다만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하든지 중대한 결과를 감수하든지’라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중동의 확전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모하나드 하지 알리 카네기중동센터 연구원은 “사우디는 경제 비전 달성을 위해 전쟁을 절대 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지금은 이란보다 사우디가 외교적으로 우위에 있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사우디와 이란과 비공개 접촉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에서 새로운 외교 무대를 구상하려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뒤 첫 공식 순방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택했으며, 무함마드 왕세자와는 남다른 ‘브로맨스’를 선보였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달부터 오만의 중재로 핵 협상을 진행해 지난 2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5차 협상까지 벌였으나 아직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양국 간 핵 협상은 핵심 쟁점인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