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풀베팅…차출된 소녀가장들
회사를 10대그룹 반열에 올려놓는 전환점으로 대우건설이라는 초대형 매물을 선택한 박 회장은 풀베팅 승부수를 던졌다. 인수대금의 45%(2조8900억원)를 5개 계열사가 외부빚까지 끌어들여 십시일반 분담했고, 그보다 더 큰 55%(3조5300억원)는 연 9% 복리수익을 사실상 보장해준 조건(풋백옵션)으로 재무적투자자에게 빌린 돈이었다.
그렇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새 식구가 된 대우건설은 인수 초창기만 해도 그나마 형편은 나쁘지 않았다. 현금성자산이 총차입금보다 많았던 대우건설의 재무지표가 결정적으로 나빠진 것은 대한통운 인수전 차출이었다. 박 회장은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또 한번 적정가치의 90%에 육박하는 풀베팅 승부수를 던졌고, 인수자금은 1년 반전 새 식구로 맞이한 대우건설에서 1조6000억원, 기존 식구 중 가장 믿을 만 했던 아시아나항공이 1조4000억원을 각각 분담토록 했다. 대한통운 인수전에 소환된 두 회사는 자체자금을 소진하고 교환사채 등 타인자본에 의존하면서 이자비용이 불어났다.
급기야 연이은 초대형 인수합병을 놓고 박삼구·박찬구 형제가 갈등을 빚으며,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계기가 됐다. 대한통운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나란히 차출됐던 ‘소녀가장’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도 결국 다른 식구가 됐다.
그리고 기존식구였던 아시아나항공에게는 떠나는 식구들이 남기고 간 숙제를 처리하는 몫까지 주어졌다. 대한통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떠나면서 남긴 금호터미널, 아시아나공항개발, 아스공항(현 아시아나에어포트)을 재매입한 것이다. ‘공항’ 이름이 붙은 계열사 2개는 아시아나항공이 필수적으로 재매입해야했던 회사였지만, 금호터미널까지 사들인 것은 분명 소녀가장의 숙명이었다.
금호그룹이 대한통운을 도로 내다 팔 당시 유력 인수후보자 중 한 곳이었던 롯데그룹은 금호터미널까지 포함한 인수의사를 타진했지만 박삼구 회장은 금호터미널을 분리해 대한통운만 팔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고, 결국 롯데는 인수전에 불참했다. 분리매각을 수용한 CJ가 인수자로 낙찰됐고 남겨진 금호터미널은 아시아나항공의 몫이었다. 원래 금호그룹 소유였던 금호터미널이 연이은 인수합병 부담으로 ‘새식구’였던 대한통운으로 잠시 넘어갔다가 다시 아시아나항공으로 이전된 것이다. 지금의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분구도가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금호터미널 순으로 만들어진 배경이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가 임박하면서 크레딧 업계에서는 재차 아시아항공의 신용도 문제가 관심사다. 남남이 된 대우건설과 달리 아시아나항공은 또 한번 채권단에서 벗어난 ‘독립 의사결정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핵심계열사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 이전과 이후의 아시아나항공은 제법 차이가 있다. 금호산업 인수 이전에도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했으나 채권단이라는 ‘외부통제’ 변수가 분명히 존재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말 채권단 자율협약을 졸업했고, 모회사 금호산업은 채권단 지분 매각을 조건부로 워크아웃 졸업이 예정된 상황이다. 박 회장에게 매각이 완료되는 동시에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을 졸업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채권단이라는 외부통제가 사라진다.
물론 박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자금 조달 구조상 인수주체인 특수목적회사(SPC) 지분을 담보로 잡히고, 인수예정인 금호산업 지분도 담보로 차입하는 형태를 띄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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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규지분에 대한 담보권만 보유하는 새로운 채권자는 워크아웃시절처럼 자산들의 돈을 받아내기 위해 투자비용은 물론 영업비용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는 ‘경영 통제’를 하지는 않는다.
신용평가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크레딧(신용도) 측면에서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를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스스로도 녹록지 않은 경쟁을 이겨내야하는 상황에서 건사해야 할 가족까지 생기기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기업신용등급이 BBB+에서 BBB로 한 단계 강등당했다. 제2국적 항공사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저비용항공사와 외국계항공사의 시장잠식이 확대되면서 점유율 하락 위험에 노출돼 있고, 항공기 도입관련 대규모 투자지출이 계속되면서 재무안정성 지표들이 저하된 것이 등급 하락 배경이다.
크레딧업계에서는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에 아시아나항공의 자금이나 담보여력이 직접 동원되지는 않지만, 상당수 외부차입에 의존해야하는 인수구조상 향후 그룹 전반의 재무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모회사 금호산업과 자회사 아시아나항공의 자산·매출 비중은 각각 20%와 80% 수준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곧 아시아나항공인 셈이다.
한 신평사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은 과거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에 나선 과정에서 재무부담 증가로 신용도가 낮아진 경험이 있다”며 “당장은 아시아나항공이 금호산업 인수에 직접 지원하지 않더라도 인수 이후 그룹 전체적인 재무안정성이 약해지거나, 과거처럼 금호타이어 인수시 자금조달창구로 동원된다면 아시아나항공도 재무여력도 그만큼 약해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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