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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 입장에선 엄청난 기회로 작용했다. 서방 자동차 브랜드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며 상당한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러시아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은 큰 노력 없이도 지배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잉 생산 물량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2023년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덕분”이라며 “중국 세관 통계에 따르면 작년 중국 전체 자동차 해외 출하량의 20% 가량이 러시아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러시아 내 중국차 판매는 전년 동기대비 62% 급감했다. 러시아에 진출한 중국 3대 브랜드 중 한 곳인 지리(Geely) 자동차는 올해 1~8월 수출이 8% 감소했고, 만리장성 자동차(Great Wall Motor)는 보합권에 머물렀다. 1위 체리(Chery) 자동차는 11% 증가했으나, 작년(25%)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말 재활용 수수료(수입세)를 인상한 영향이 크다. 수수료 인상 후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승용차 가격은 1리터 또는 2리터 엔진을 장착한 경우 8000달러 이상 뛰었다. 차입 비용도 덩달아 높아졌고 이는 고금리와 맞물려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러시아 전체 자동차 판매량도 1년 전보다 27% 줄었다.
중국 전기차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과잉생산으로 물량은 넘치는데 예전처럼 러시아에 수출할 수 없어서다. 내수 역시 이미 과잉생산·공급으로 치열한 가격 인하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이에 따라 해외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경제·정치 리스크 그리고 자국 내 과당경쟁 해소라는 ‘이중 과제’에 놓인 셈이다.
문제는 중국이 다른 국가에 대한 수출 물량을 늘리기 시작하면 무역 상대국의 보호주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국가 또는 지역에선 이미 중국산 전기차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다면서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지난해 최고 3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10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올해부터 러시아를 제치고 중국산 자동차 수출액이 가장 많았던 멕시코는 미국의 압박에 못이겨 자동차를 포함한 중국산 제품들에 대해 관세 인상을 검토 중이다.
이들 외에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리려고 해도 러시아에 진출하지 않은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가 중동, 남미 등과 같은 전략 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서방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복귀를 모색하고 있어서다. 이러한 거시경제 및 경영 환경은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 강화 기조 속에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 전환을 압박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서드브리지의 로잘리 첸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 브랜드의 러시아 점유율이 이미 50~60% 상한에 도달했다. 앞으로의 성장은 현지 정책 및 시장 포화 등으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며 “또한 서방 브랜드의 복귀는 중국산 차량 판매의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리 자동차는 해외 시장 다각화에 더욱 힘쓸 것이고 투자자들과 약속했다. 회사는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이탈리아에 진출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국제 판매 및 유통 네트워크를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UBS그룹의 중국 자동차 리서치 책임자인 폴 공은 “여러 국가에서 발생하는 경기 순환은 중국은 물론 어떤 자동차 제조업체도 통제할 수 없다”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존재하는 사업 기회를 잡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동과 남미는 중국 수출업체들 입장에서 유망한 성장세를 보이는 두 지역”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