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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고기뷔페를 운영하는 김한기(58)씨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삭발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에 생존의 위기로 몰렸다고 생각한 김씨는 전날 서울로 와 여의도 공원에서 차박(차에서 숙박)을 한 뒤 삭발식에 참여했다. 김씨는 “노후를 위해 다 걸고 차린 가게인데 규모가 크다 보니까 2억원을 까먹었더라”며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자영업자만 무시하는 것 같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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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에 차려진 의자 10개에 맞춰 일렬로 앉은 자영업 단체 대표들은 첫 주자로 삭발을 시작했다. 남녀 할 것 없이 머리띠를 벗어내린 이들은 바리깡(이발기)을 든 동료가 머리를 밀자 눈을 질끈 감았다. 삭발이 마무리될 때쯤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자영업자들이 눈에 띄었다. 체념한 듯 먼 곳을 응시한 채 삭발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10명씩 한 조를 이뤄 연속으로 삭발을 이어나갔다.
삭발을 마친 최모씨는 2년 동안 서울 강동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했지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했다. 최씨는 “임대료도 내지 못해 명도소송을 당한 상황이라 내일 재판에 참석하러 간다”며 “아내와 수십 년간 열심히 살아서 가게 하나 열었는데 정부가 기다려달라는 것도 2년이 지났음에도 돌아오는 건 없었다”고 절규했다.
부산 해운대에서 삭발식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는 양모씨는 “9시 이후 서로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갈 때 저희는 차디찬 길거리에 몰려 갈 곳을 잃는다”며 “다 불 지르고 죽어버릴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정부는 자영업자에게 모든 피해에 대한 온전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단체는 ‘자영업자 파산’을 선언하기도 했다. 민상헌 코자총 공동대표는 “2022년부터 코로나로 발생한 모든 빚은 정부가 갚아야 한다. 자영업자는 이제 빚을 한 푼도 갚지 않을 것”이라며 “더 이상 인건비, 임대료, 공과금, 각종 대출을 갚을 길이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오호석 코자총 공동대표 또한 “이제 버틸 돈도, 버틸 희망도 없어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선포한다”며 “정부는 방역지침 실패를 자영업자에게 전가하고 방역패스 시행까지 하면서 자영업자 생존의 길을 막고 있다. 모든 피해를 소급 적용해 전액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삭발을 마친 자영업자들은 국회로 행진할 예정이었지만 무산됐다. 대기 중인 경력이 이들을 에워싸고 경로를 막았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다만 단체는 이날 삭발한 머리카락을 모두 모아 청와대로 보내겠단 방침이다. 다음달 10일께엔 서울 광화문에서 방역지침으로 피해를 본 다른 단체들과 대규모 투쟁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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