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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日 제국주의 요람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

장영은 기자I 2015.07.07 18:28:32

요시다 쇼인이 세운 사설학당 일본 근대산업시설과 등재
이토 히로부미·가쓰라 타로·데라우치 마사다케 등 배출
정부"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제기하는 건 효과적이지 않아"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새로 목록에 오른 일본 유산 목록을 보면 다소 어색한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쇼카손주쿠’(松下村塾)다. 이 곳은 일본 에도시대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세운 사설학당이다.

이 학당이 눈에 띄는 이유는 새롭게 등재된 일본의 세계유산이 근대산업시설로 가치를 인정받아 목록에 올랐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일본)’이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이번에 등재가 결정된 23곳 중 나머지는 모두 제철소, 조선소, 탄광과 관련 시설들인 반면 딱 한 곳 쇼카손주쿠는 학당이다.

이쯤 되면 쇼카손주쿠가 목록에 오른 이유, 일본이 이곳을 세계유산에 올리고 싶어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명목상으로는 일단 쇼인이 메이지 혁명의 설계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연구하고 가르친 것이 단순히 근대 혁명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쇼인은 19세기 일본의 제국주의와 침략주의의 토대를 만들고 가르쳤다. 그는 저서인 유수록(幽囚錄)에서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해 일본 제국주의 팽창 정책에 기반을 제공했다.

쇼인은 이 책에서 “오카나와(琉球)와 조선(朝鮮)을 정벌하여 북으로는 만주(滿州)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臺灣)과 필리핀 루손(呂宋)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쇼카손주쿠가 배출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고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역인 가쓰라 타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 일본 제국주의의 선봉에 섰던 인물들이 모두 쇼카손주쿠 출신이다.

일본 근대화와 일제의 사상적 뿌리였던 이 곳을 세계유산에 올림으로써 보통국가, 더 나아가서는 ‘아름다운 국가’로 거듭나려는 일본의 속내가 읽힌다.

이번 세계유산 등재 결정 과정에서 논란이 되면서 ‘강제노역’ 사실을 주석에나마 명시하기로 한 다른 시설들과 달리 쇼카손주쿠는 문제제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요시다 쇼인이 메이지유신의 이론적 뒷받침을 한 인물이고 그의 제자들이 메이지유신과 제국주의의 주도세력이 됐다고 알고 있다”면서도 “이 문제를 세계유산위원회 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유네스코 차원에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했어야 하는 일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병합하는 방법으로 번영하고 평화를 이루자는 쇼인의 주장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평화’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며 “다양한 차원에서도 관련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살아 있는 군위안부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 풀어야 하는 과거사의 짐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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