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중국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장관)은 ‘트럼프 행정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고 묻는 로이터통신 특파원 질문에 이러한 구절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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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행유부득, 반구저기’라고 읽는 이 구절은 중국 대표 사상가인 맹자(孟子)의 ‘이루상’(離婁上)에서 나오는 글귀다.
내가 한 일에서 성과가 없었다면 그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정치인 등이 즐겨 쓰는 문구 중 하나다.
왕 부장이 이러한 맹자의 문구를 인용한 것은 바로 미국의 관세 정책의 실효성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은 지난 몇 년 동안 관세·무역전쟁을 통해 얻은 것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무역적자가 확대됐는가, 축소됐는가? 제조업의 경쟁력은 상승했는가, 하락했는가? 인플레이션은 나아지고 있는가 아니면 악화하고 있는가? 사람들의 삶은 더 좋아졌는가, 아니면 더 나쁘게 바뀌었는가?”라고 몰아세웠다. 일종의 반문법을 통해 미국의 관세 정책이 정작 성과가 없었음을 꼬집은 것이다.
◇“전쟁 준비됐다” 치닫는 미·중 갈등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중 관계는 냉각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만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하면서 양국이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가 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20% 보편 관세를 매기고 이에 대응해 중국도 미국산 일부 제품에 관세를 10~15% 인상하면서 분위기가 악화됐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4일과 5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어떤 전쟁을 준비하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지목했고 미국의 국방장관은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준비가 돼있다”고 응수했다.
미·중 감정이 예민한 상태에서 열린 왕 부장의 기자회견은 무수한 내외신 기자들이 몰리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왕 부장은 이 자리에서 사실상 모든 사태의 원인은 미국에게 있다며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은 대중 관세 부과에 중국으로부터의 펜타닐(마약의 일종) 유입을 명분으로 들고 있다. 중국이 자국에서 생산한 펜타닐이 미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왕 부장은 “이미 2019년에 미국 요청에 따라 세계 최초로 모든 펜타닐 관련 물질을 (단속) 목록에 올렸다”면서 “미국 내 펜타닐 남용은 미국 스스로가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의 많은 문제에 대한 비판과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중국 같은 해외 국가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미국 내부의 문제를 먼저 살펴볼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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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무대서 사라진 한국, 관계 개선 요원
왕 부장은 이날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등), 상하이협력기구(SOC), 아프리카연합(AU), 동남아 등 다양한 국제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미국에 대응해 다른 국가와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국제 외교의 영향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의견 제시와 해법 제안을 꺼내기도 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2차 세계대전) 역사를 잊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양측의 공동 노력 덕분에 양국 관계는 개선과 발전의 긍정적인 추진력을 보여줬다”면서 양자 관계를 소개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1시간 30분 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한국은 물론 한반도에 대한 언급은 한차례도 없었다. 여러 한국 특파원이 손을 들었으나 질문권을 받지도 못했다. 왕 부장은 지난해 3월 기자회견 때는 “한반도 정세가 날로 긴장되는 것은 중국이 원치 않는 일”이라며 한반도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이는 지금 중국에서 한국에 대한 시각을 드러내는 사례로 보인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비자를 면제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환담하는 등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재판 최후 진술에서 중국인 간첩을 지속 언급하는 등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가면서 중국측의 반발을 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