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군수·안보 섹터 투자에 집중할 겁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복잡다단하게 변모하면서 중동 전역에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되면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서다. 자본시장에도 전운의 영향은 미칠 전망이다. 다수 전문가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경제 다각화 정책을 펼친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가 투자 분야를 군수·안보로 선회할 것이라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UAE와 사우디가 지역 내 불안감 고조를 이유로 투자를 줄인 만큼, 하반기에도 관련 분야를 제외하고는 자금조달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에 중동에 진출한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긴장감도 덩달아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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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이전부터 UAE·사우디의 국부펀드 등 출자자(LP)나 투자사들이 중동 정세가 불안할 때 일단 투자를 잠시 중단하거나 줄이는 편이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실제로 데이터 플랫폼 매그니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 벤처캐피털(VC) 펀딩 규모는 7억 6800만달러(약 1조 604억원) 규모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한 수치다. 이 같은 분위기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의 중심지인 가자지구와 우리 기업이 대거 진출한 UAE·사우디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상당해 별 영향이 없을 거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는 조만간 상황이 급변할지 모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안에 정통한 업계 한 관계자는 “UAE나 사우디 쪽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지금 당장은 영향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두 국가가 중간에 낀 형국이기도 하고 자국 내에 레반트(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지역 국민이 많이 살다 보니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투자 분야 역시 바뀔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경제 다각화 정책을 이유로 다양한 분야에 자금 조달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펼쳐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군수·안보 섹터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카네기재단은 하반기 UAE와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군수·안보 섹터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카네기재단은 GCC 국가들이 변화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영토 안보에 힘쓰리라 예측했다. 이에 더해 영공·해상 구역 보호, 초국가적 방어 협정 체결, 드론·감시 기술에 투자가 쏠릴 것으로 보인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연구실장 역시 비슷한 관측을 내놨다. 성 실장은 “UAE·사우디가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 군수·안보 협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자국의 안보 자체를 미국처럼 중국이나 러시아가 보장해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하다 보니 미국에 더 치중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 호환 가능한 무기를 우리나라가 잘 만들고 있다 보니 국내 기업에 관련 분야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어 “그쪽에서는 무기 수입뿐 아니라 기술 이전도 원하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유연하다 보니 매력적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성 실장은 우리 기업에 현지 동향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이란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이스라엘에 입히느냐에 따라 이스라엘의 반격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UAE·사우디 등 중동 전역에 미칠 영향이 달라지니 전쟁 양상을 계속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일각에서는 전쟁이 길어지면 군수·안보 섹터 외에도 푸드테크 섹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상황이 전면전까지 치달으면 UAE나 사우디가 식량안보에 신경 쓸 것”이라며 “푸드테크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