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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차명계좌 막판 숨바꼭질…당국, 보여주기식 대응 그칠수도

박종오 기자I 2018.02.19 18:54:29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종오 전재욱 기자] 금융 당국이 이건희 삼성 회장 차명 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며 뒤늦게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과징금 부과 기한이 겨우 두 달 남짓 남은 터라 보여주기식 대응에 그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은 19일 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 등 4개 증권사 특별 검사에 착수했다. 원승연 금감원 자본시장·회계 부원장을 단장으로 한 태스크포스(TF) 인력 14명이 투입됐다.

검사 대상은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따라 금융 실명제를 전격 시행한 1993년 8월 12일 이전 이 회장이 4개 증권사에 차명·가명 등으로 개설한 계좌 27개다. 신한금융투자 13개, 한국투자증권 7개, 삼성증권 4개, 미래에셋대우 3개 등이다.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한 것은 금융실명제법상 과징금을 부과하려면 해당 차명 계좌 내 예금 등 과거 잔액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은 대통령 긴급 명령 시행 전 만든 차명 계좌 명의를 금융실명제법을 정식 시행한 1997년 12월 31일 이전까지 실명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과징금 50%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 기관이 긴급 명령 시행일 현재 차명 계좌 잔액의 절반을 강제로 걷어서 정부에 내도록 했다.

이 회장은 긴급 명령 시행일 직후인 1993년 8~10월 사이 해당 계좌 27개 명의를 모두 삼성 임직원 실명으로 전환했다. 금융 실명제가 개인이 금융 거래 시 주민등록표상 자기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제시하면 실명 거래로 인정한다는 허점을 이용한 ‘꼼수’다.

해당 계좌 실소유주는 물론 이 회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13일 법제처가 “이런 계좌도 사실상 차명 계좌인 만큼 모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유권 해석을 내리며 금융 당국도 부랴부랴 과거 계좌 잔액 확인에 착수한 것이다.

문제는 과징금 부과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명 계좌 과징금은 국세기본법에 따른 부과 가능 기간(제척 기간)이 10년이다. 삼성 특검이 이 회장 차명 계좌 수사 결과를 발표한 2008년 4월 17일을 과징금을 매길 수 있는 첫날로 잡을 경우 과징금 부과 기한은 올해 4월 17일 이전까지다.

금융 당국이 이제껏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뒤늦게 티만 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법제처 해석 전까지 금융위는 실제 돈 주인이 달라도 계좌 명의가 실명이기만 하면 실명 계좌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회장 차명 계좌 27개에 과징금을 매길 수 없다는 얘기다. 금감원도 앞서 작년 11월 해당 4개 증권사의 이 회장 차명 계좌를 점검하면서 회사 측에 단순 확인만 요청했을 뿐 직접 거래 명세나 잔액 등을 현장 검사하지 않았다. 당시 4개 증권사는 “상법상 장부 보관 의무 기간인 10년이 지나 해당 계좌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검사에서 해당 차명 계좌의 25년 전 잔액을 확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전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장은 “워낙 오래전이라 증권사가 당시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의례적으로 자료를 폐기했다고 답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당시 이 회장 차명 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법제처 유권 해석이 나온 만큼 직접 당시 문서와 데이터 등을 낱낱이 찾아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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