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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은 국정농단을 초래한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61·구속)에게 기존 혐의 외에 형량이 무거운 뇌물수수죄를 추가했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기소가 가능한 수준까지 진척시켰다. 두 번의 도전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성공한 것은 특검 수사의 백미로 꼽힌다.
이밖에도 ‘난적(難敵)’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현 정권의 장관 3명을 구속하는 등 이번 사태에 연루된 고위직 인사들의 혐의를 상당 부분 밝혀냈다. 이제 수사결과를 토대로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일만 남았다.
◇초반 ‘속도전’ 각광, 후반 ‘朴·崔 저항’에 고전
지난해 12월 1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박영수 특별검사는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지명하는 등 곧바로 특검팀 구성을 마친 뒤 같은 달 21일 현판식을 열고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특검은 삼성 뇌물죄와 문화계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 이화여대 학사 비리, 박 대통령 관련 비선진료 등 4대 의혹을 핵심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출범 초 관련 인사나 장소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펼쳤다.
첫 성과는 지난해 마지막 날 나왔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이던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종용한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삼성이 합병 대가로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올해 1월 들어서도 구속자가 속출했다. 류철균 이대 교수(3일)와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10일), 김경숙 전 이대 학장(18일) 등 ‘이대 비리’ 연루자들이 잇따라 구속됐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12일 동시 구속되는 등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자신감을 얻은 특검은 지난달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사흘 뒤인 19일 법원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하고 최씨 등에게 지원을 약속한 430억원을 뇌물로 봤지만 법원은 대가성 입증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뇌물수수자인 박 대통령 최씨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특검은 첫 영장 기각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지난달 21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을 구속하면서 분위기를 반전했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과 최씨 측은 특검 흔들기에 나섰다. 최씨는 지난달 25일 특검에 강제 소환되는 과정에서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강변했고 박 대통령도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특검이 조사 중인 뇌물수수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엮어도 너무 심하게 엮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난 9일로 예정됐던 대면조사를 일정 유출 등을 이유로 거부한 뒤 특검 종료 시점까지 직접 조사를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특검은 수사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 와중에 특검은 삼성 관계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하는 등 뇌물죄 입증을 위한 보강 수사에 전력을 기울였다. 또 ‘스모킹건’으로 불리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39권을 추가 확보하는 등 이 부회장 구속영장 재청구를 위한 준비를 진행해 나갔다.
지난 13일 이 부회장을 재소환해 조사한 뒤 이튿날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초강수는 17일 영장 발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뇌물의 대가로 합병뿐 아니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논리가 인정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 총수 중 처음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지난 15일에는 최경희 전 이대 총장을 구속하면서 관련 의혹 수사를 마무리했고 ‘비선진료’ 몸통인 김영재·박채윤 부부도 각각 의료법 위반과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했다. 최씨에 대해서는 뇌물죄는 물론 블랙리스트와 이대 비리 관련 혐의도 포함해 기소했고 박 대통령은 조건부 기소 중지로 처리했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 소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탄핵 인용이나 임기 만료 시점에 재판에 넘기기 위한 조치다.
특검은 수사시한 종료 이틀 전인 지난 26일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 의료법 위반 방조와 위증,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국회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끝까지 수사 의지를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