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비은행 지급결제 도입 한국은행 '반대'..."신중한 접근 필요"

노희준 기자I 2023.03.30 16:08:33

2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논의결과 발표
한은, 비은행 지급결제 허용 분명히 반대
"SVB파산 등 현 시점 논의 자체 바람직하지 않아"
금융당국 "동일기능-동일리스크-동일규제 관점에서 봐야"

[이데일리 노희준 전선형 기자] 금융당국이 증권, 카드, 보험 등 비은행권에 지급결제를 허용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급결제의 핵심역할을 하는 한국은행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실리리콘밸리은행(SVB)파산 등 해외발 금융시장 불안 요인까지 겹쳐 추진 동력은 떨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3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민관 전문가들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회의를 개최했다. 금융위, 금감원은 오는 6월말까지 한국은행은 물론 각 금융업권 협회와 연구기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TF를 운영해 금융권 개혁 방안을 마련 중이다. TF는 전날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허용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비은행에 지급결제를 허용한다는 것은 증권사, 카드사, 보험사, 핀테크사가 고객에게 입출금 계좌를 직접 발급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고객 돈을 직접 관리하게 된다는 의미로 은행의 ‘월급통장’ 같은 계좌를 각 업권에서도 만들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현재는 은행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의 하나를 이를 검토 중이다.

각 업권은 지급결제가 허용된다면 소비자 효용이 증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전날 회의에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허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였다. 편의 증진 효과는 약한 반면 부작용은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은은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확대 시 고객이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하다”며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은행의 대행결제 금액 급증, 디지털 런(연쇄 자금 인출) 발생 위험 증대 등에 따라 큰 폭으로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비은행권에 대한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허용은 최소한 주요국과 같은 결제 리스크 관리제도의 근본적 개편을 전제로 금융안정 및 금융소비자 보호 등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과 관련해 결제 리스크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 2021년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반대의견을 보인 전례도 있다. 당시 추진되던 전금법 개정안은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개정안으로 빅테크 업체를 ‘종합지급결제사업자’로 지정해 양성화하고, 빅테크 기업의 자금거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전자지급거래 청산업’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급거래청산이란 금융기관 간 주고받은 금액을 상쇄해 거래를 단순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한은은 지급거래청산을 포함해 국내 지급결제 제도 전반을 독자적으로 감시, 관리해왔다.

그런데 당시 개정안에서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이와 관련한 허가권을 한은이 아닌 금융위에 부여하는 내용이 실리면서 한은이 격렬하게 반대에 나선 바 있다. 한국은행의 고유업무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 뒤로 한국은행은 지급결제방안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는 게 금융권 의견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도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강영수 금융위 은행 과장은 “한은이 최종 대부자로서 지급 결제망 관리 체계에서 중요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예전 과거 사례도 그랬듯이 한은 협조 없이 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영수 과장은 다만 “앞으로 논의가 어느 쪽으로 갈지 지금 예단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TF를 주재하고 있는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비은행권 지급결제 문제는 효율성과 안정성 간 상충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하는데 소비자 편익과 지급결제 리스크를 단순히 비교형량해 판단하기 어렵다”며 “‘동일기능-동일리스크-동일 규제’의 관점에서 지급결제 리스크 관리 등 필수적인 금융안정 수준을 전제로 충분한 소비자 편익 증진 효과 등을 살피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