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능력을 가진 코더가 특급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자라면 억대 연봉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구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어린 나이부터 코딩 교육을 시키는 게 유행이 됐다. 한 달 수강비가 30만 원대에 교구 가격은 100만 원을 넘는 고가의 코딩 사설학원이 특수를 맡고 있다고 한다.
GPT-3가 뉴스 기사나 칼럼을 쓰고, 코덱스가 코딩을 하고, 인공지능이 X-레이 사진을 읽고 폐암을 진단해 내는 세상에서 자녀를 어떻게 준비시켜야 아이들이 컸을 때 직업 걱정을 안 하게 될지를 고민하는 부모가 많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해 있을 20년, 30년 후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까.
1997년 IBM이 개발한 체스 인공지능 딥 블루에게 패한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꺾은 것처럼 딥 블루가 체스에서 카스파로프를 꺾은 건 체스 역사에 남을 중요한 사건이었다. 인공지능에 패한 최초의 체스 세계 챔피언이란 오명을 갖게 된 카스파로프는 체스를 그만두고 실직자가 되었을까. 놀랍게도 카스파로프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다. 카스파로프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팀을 이뤄 체스를 두는 센타우르 체스를 개발해낸 것이다.
센타우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의 모습을 한 상상의 종족이다. 몸을 이루는 말의 힘을 다스리는 정신이 상반신을 이루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카스파로프가 인공지능과 팀을 이뤄 두는 체스 게임을 센타우르라 부른 것도 인공지능의 계산을 다스리는 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의미일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인간과 인공지능 연합팀이 인공지능 세계 챔피언과 체스를 두면 연합팀이 이긴다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발달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인간과의 팀워크가 오히려 방해가 되고 연합팀이 인공지능에게 패하는 날이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것과 병행해서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인간의 능력도 향상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연합팀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온갖 분야에서 인간의 전문성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될 미래를 준비하려면 인공지능과 전문성 경쟁을 벌이려 하지 말고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인공지능 앱과 인공지능을 탑재한 하드웨어가 개발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인공지능을 사용하면서 인공지능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게 단순한 코딩 조기교육보다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