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최근 들어 경기 회복세가 주춤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회복 국면에 진입하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상승세가 당초 예상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대됐던 ‘새정부 효과’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2012년 이후 이어졌던 만성적인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①수출 ‘고공행진’ 맞나
가장 먼저 짚어볼 게 수출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4월께부터 ‘경기 반등론’이 비등했던 것도 수출이 고공행진을 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올해 1월부터 두자릿수로 반등했다. 1월 이후 매달 11.1%→20.2%→13.1%→23.8%→13.2%→13.6%→19.5%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달 1~10일 수출 증가율도 무려 28.2%에 달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수출은 여전히 호황인 게 맞다. 수출이 워낙 좋다보니, 경기가 버티는 힘도 약하지 않다는 평가다.
우리 수출과 밀접한 국제유가도 최근 배럴당 50달러대를 회복하고 있다. 지난 두 달간 유가는 배럴당 40달러대로 갑자기 하락해 수출 둔화 우려를 샀는데, 다시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고질적인 쏠림현상이다. 13대 주요 품목을 뜯어보면, 수출의 흐름은 ‘외발자전거’와 비슷하다. 독보적인 업종은 반도체다. 올해 들어 매달 50% 안팎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7월) 수출액은 78억9400만달러. 반 년 전만 해도 60억달러 안팎 수준이었는데, 단박에 80억달러 안팎까지 올라섰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잇단 ‘어닝 서프라이즈’ 덕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반도체 외에 자신있게 성장을 외칠 수 있는 업종을 찾기 어렵다. 수출액 기준으로 올해 초보다 더 나아진 업종은 반도체가 거의 유일하다. 그나마 잘 나간다는 석유화학도 매달 30억달러 중반대에 머물고 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와 자동차부품도 상황은 비슷하다. 만에 하나 반도체마저 비틀거린다면? 그 이후는 불보듯 뻔하다. 현재 수출 증가세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해석도 무리는 아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 말고는 강한 회복을 보이는 업종이 없다”면서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등도 수요가 회복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2분기 산업계 업종별로 실적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수출발(發) 경기 착시현상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대근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말이다. “우리 경제가 일부 산업에만 너무 의존하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다시 안 좋아질 수 있습니다.”
②소비는 언제 반등하나
거시경제 흐름을 현미경처럼 주시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7인의 현자(賢者)’로 불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아닐까 싶다.
이들이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일제히 언급한 게 있다. 바로 민간소비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소비의 개선이 현실화하는지 여부를 더 시간을 갖고 판단해야 합니다.”(A 금통위원)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출 확대가 내수로 파급되고 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B 금통위원)
이유가 있다. 소비심리는 최근 급등했다고 보는 게 맞다. 문재인정부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은이 매달 내놓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1.2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터진 지난해 말부터는 한동안 90포인트 초중반대에서 움직였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문제는 실물지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소매판매액 증가율(전기 대비)은 지난 4~6월 매달 0.7%→-1.1%→1.1%다. 당국 한 고위인사의 표현을 빌리면 “퐁당퐁당 흐름”이다. 한은이 산출하는 국내총생산(GDP)의 2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전기 대비 0.9%로 1분기(0.4%)보다 상승했다. 다만 이 역시 반짝 성장에 그칠지, 아니면 계속 오를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밝은 전망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질 임금부터 반등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 새정부 효과 기대감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실질 구매력이 올라야 한다. 1400조원의 가계부채를 짊어진 와중에 구매력이 눈에 띄게 높아지지 않으면 소비 반등을 기약하기 쉽지 않다. 주원 실장은 “아무래도 구매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소비가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 와중에 최근 터진 북한 리스크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금융시장 한 인사의 말이다. “요즘 주가가 급락하는 게 계속 보도되고 있잖아요. 이번달 소비심리는 아무래도 더 하락하지 않겠습니까.”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북한 리스크가 어떻게 정리될 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소비와 투자에 악영향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③부동산 리스크 영향은
우리 경제에 있어 부동산은 빼놓을 수 없는 동력이다. 최근 2년여 경기는 사실상 부동산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1분기 당시 GDP 중 건설투자 증가율은 무려 9.0%(전기 대비)를 기록했고, 이후 올해 1분기까지 1.4%→2.1%→-2.2%→7.6%→3.1%→2.2%→-1.2%→6.8%의 흐름을 보였다. 민간소비, 정부투자, 설비투자 등과 비교해 성장세가 가장 견고했다. 박근혜정부가 부동산을 통한 성장을 내세운 영향이 컸다.
다만 올해 2분기부터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건설사 시공 실적을 뜻하는 건설기성은 4월 이후 -4.1%→-2.6%→-1.5%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해 1~3월(-0.8%→6.6%→4.5%)과 비교해 주춤해졌다. 건설수주 역시 6월(-0.4%) 갑자기 마이너스(-) 증가율로 전환했다. 2분기 GDP 내 건설투자 증가율도 1.0%에 그쳤다. 여기에 문재인정부의 8·2 대책까지 나오면서, 과거와 달리 부동산이 오히려 성장에 악영향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제기된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정부 대책 직후인 지난 7일 기준 서울 평균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03% 하락했다. 주간 단위 기준으로 서울 집값이 내린 건 지난해 2월 마지막주(-0.01%) 이후 75주 만이다.
“적어도 가을 이사철인 올 9월부터 내년 봄까지는 본격적인 조정이 나타날 것”(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이라는 관측도 벌써부터 나온다. 주한광 세종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박근혜정부 때 건설경기로 경제를 부양하려다보니 규제를 많이 풀었다”면서 “앞으로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부동산 경기는 그 흐름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비관론이 많았으나, 보란듯이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단기 조정에 그칠지, 아니면 대세 하락이 이어질지는 아직 판단이 어렵다. 앞으로 나올 몇 가지 지표들을 더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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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충격에 취약해진 시장
최근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에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다. 북한 리스크는 어느 정도 ‘학습효과’가 생긴 이슈 아니던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행이 워낙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기 회복세 탄력이 줄어드는, 그러니까 펀더멘털이 약해지는 흐름이어서 더 충격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원·달러 환율이 대표적이다. 지난 11일 환율은 1143.5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정학 리스크에 있기 전인 지난 8일 마감가는 1125.1원. 불과 3거래일 사이 20원 가까이 급등(원화가치 급락)한 것이다.
김선태 KB국민은행 연구위원은 “하반기 들어 경기 회복세가 약해지며 원화 강세 모멘텀이 줄어들고(원·달러 환율 하락 압력이 약해지고) 있었다”면서 “그 와중에 북한 리스크가 불어져 환율이 더 튄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경제 펀더멘털이 나빠지면 자국 통화가치는 하락한다. 특히 해외 투자자들에게 원화 표시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하락하고, 그만큼 자금 유출 압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부도위험 지표로 꼽히는 한국 외평채 5년물의 한국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1일(현지시간) 69.77bp까지 급등했다. 지난해 2월25일(71.69bp) 이후 1년6개월 만의 최고치다.
14일 원·달러 환율은 주말 사이 나온 미국의 물가지표 둔화로 3.8원 하락(원화가치 상승)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사라졌다고 보는 시장 참가자들은 거의 없다.
주식시장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주한광 교수는 “우리 경제가 기업에 더 유리한 환경으로 바뀐 것도 아닌데 최근 주가지수가 큰 폭 올랐던 것을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⑤그래도 비관은 이르다
우리 경제를 언급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세계 경제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세계 경제 흐름과 함께 간다는 건 이견이 별로 없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들어 경기가 나아지고, 문재인정부 들어 경제가 괜찮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세계 경제가 좋아진 것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 세계 경제 흐름은 어떨까. 한은은 “세계 경제의 회복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경제는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최근 ‘고용 서프라이즈’로 시장을 안심 시켰다. 지난달(7월) 미국의 비농업부문 고용은 20만9000명(계절 조정치) 증가했다. 시장의 기대치(18만명)를 큰 폭 상회했다. 같은달 실업률도 4.3%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정하는 완전고용 실업률(4.6%)을 계속 하회하고 있다.
유럽도 비슷하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6%. 소폭이나마 시장 예상치(0.5%)를 넘어섰다. 일본의 2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1.0%를 기록했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집계한 민간 예측치(0.6%)를 웃돈 수치다. 중국 경제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하나하나 뜯어보면 골칫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상하리만치 낮은 물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현지언론은 중국 경제의 리스크를 ‘회색 코뿔소’(발생 가능성이 높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리스크 요인)에 비유하면서 △그림자금융 △부동산버블 △기업부채를 언급했다.
다만 세계 경제의 흐름이 아직은 견조하다는 평가가 많고, 이 때문에 우리 경제도 미약하나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관측이다. 또다른 당국 고위관계자는 “최근 경기 회복세가 꺾이고 있다는 판단은 이르다”면서 “당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관건은 앞으로다. 다시 둔화 국면으로 갈듯 말듯한 상황에서 반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삼모 교수는 “세계 경제가 끝까지 좋을 수는 없다”면서 “가계 소비는 최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은데 기업 투자는 오히려 약해지는 것 같다.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교수의 지적도 비슷했다. 그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소득 주도 성장론 등 수요 측면의 성장론이 최근 많은데,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렵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발전이고,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반등만 기대해서는 좋아질 수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