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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레임덕의 계절…당정청 ‘모른다 증후군’ 확산

김성곤 기자I 2016.11.02 16:02:25

최순실 파문 확산에 與 친박 인사 “모른다” 일관
朴대통령과 거리두기 행보…친박계 각자도생 정국
안종범 靑수석 말바꾸기, 朴대통령에 법적책임 떠넘겨
황교안 총리, 개각 불만(?)에 이임식 취소 해프닝

이정현(오른쪽 세번째) 새누리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 간담회에서 정병국 의원(왼쪽)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박근혜 대통령 옆에 최순실이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알았지. 그걸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다”(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10월 27일)

“최태민과 최순실, 정윤회는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알고 있었다. 친박이 몰랐다고 하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보다 더 심한 얘기다.”(전여옥 전 한나랑 대변인, 11월 1일)

“최순실이나 정윤회가 박근혜 정권의 실세다. 친박들이 최순실을 모른다면 정말 거짓말에다 양심을 속이는 것이다.”(이재오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 11월 2일)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온나라를 뒤흔들면서 여권 안팎에서 ‘모른다 증후군’이 속출하고 있다. 당정청 핵심포스트에서 현 정부를 뒷받침해왔던 주요 인사들이 청와대 비선실세로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 씨와의 관계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는 것. 지지율 10%도 위태로울 만큼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심화되면서 역대 정권 말기마다 되풀이되는 쓸쓸한 풍경이다.

◇“‘비선실세’ 최순실 모른다·본 적도 없다” 주요 인사 부인으로 일관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이른바 ‘모른다’ 열풍이 불고 있다. 온국민이 다 알고 있는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것. 레임덕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선긋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각자도생의 정국이다. ‘친박’이라는 브랜드로 역대 선거의 거친 파고를 넘나들었던 정치인들마저 탈박 행렬에 가세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모습은 5공화국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도 어른이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며 의리를 지켰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최순실 씨의 박 대통령 연설문 사전 열람 의혹이 불거지자 “잘 모른다”고 밝혔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 씨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1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최순실) 얘기를 들은 적 있을 뿐 일면식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10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재현됐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물론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역시 최순실 씨와의 관계에 대해 “모른다”고 밝혔다. 이밖에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 역시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밝혔다.

◇‘모른다 증후군’ 넘어 말바꾸기’ 등장…황교안 총리 이임식 취소 해프닝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확산되면서 ‘모른다 증후군’를 넘어서 ‘말바꾸기’ 현상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들이 향후 수사와 재판에서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본인의 법적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말바꾸기’ 현상은 배신의 정치라는 막장 드라마로 이어지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원의 모금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안종범 수석이 대표적이다. 안 수석은 “모든 일은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다.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측근에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기업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은 것으로 사실상 법적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떠넘긴 것이다. 앞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역시 대기업의 자발적 모금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꿔 “안종범 수석 등 청와대 측이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모금에 힘을 써달라’고 지시한 게 사실”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후폭풍 속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의 이임식 취소라는 해프닝도 불거졌다. 사실상 국가 기강이 무너진 셈이다. 이날 청와대의 총리후보자 지명 발표 직후 총리실은 황 총리의 이임식을 공지했다가 곧바로 취소했다. 김병준 후보자의 국회 인준 상황을 고려하면 국정 2인자의 공백이 장기화돌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일각에서는 황 총리가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개각 단행에 불만을 표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와 관련,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주요 인사들에게 현 정국에 대한 자기반성이나 성찰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현 정국은 레임덕 수준 이상의 통제불능 상황이다. 이 정권은 완전히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에 참여한 핵심 인사들 역시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최순실도, 박근혜 대통령도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라면서 “난파선에서 나홀로 살아남겠다는 자기보호 본능의 일환이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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