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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탓에 증상 있어도 출근"…거꾸로 가는 방역지침 규탄

이소현 기자I 2022.03.24 14:47:25

의료연대본부, 의료·돌봄기관 현장실태 폭로
"설명 없이 의료진 격리 기간 단축…최대 3일"
"환자 확진되면 간병인 탓, 집 못가고 환자 돌봐"
방역 완화 중단, 현장 인력 확충·안전대책 촉구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증상이 남아 있었지만, 의료공백 탓에 출근한 간호사는 근무 도중 쓰러졌습니다.”

“현장에 남은 의료진은 16시간 연속 근무하는 ‘더블듀티’가 일상이고, 쉬는 날 없이 6~7일 과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코로나19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연합)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돌봄 기관 종사자들이 병동을 박차고 나와 이러한 현장실태를 폭로했다.

의료연대본부는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현장은 한계에 다다랐지만, 의료진의 희생만 강요한 채 방역완화를 고려하고 있는 정부의 방역지침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규탄했다.

최근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국민 5명 중 1명이 감염력을 보이고 있어 의료진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의료연대에 따르면 환자를 돌볼 간호사가 없어 병동을 폐쇄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소재 병원에서 한 병동의 간호사 80%가 감염되어 인력이 부족하자 “병원 문 닫으면 월급을 어떻게 주느냐”며 병동을 닫지 않고 의료진에 코로나 검사를 받지 말라고까지 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방역당국이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에 제시한 BCP(업무 연속성 계획) 지침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무증상·경증 의료진은 대상자의 동의하에 최소 3일 격리 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지만, 기관은 의료진에게 사전 설명 없이 격리 기간을 단축했으며, 최대 3일 격리 후 업무에 복귀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의료연대는 지적했다.

김민정 간호사(의료연대본부 조직부장)는 “무증상일 경우 격리하지 말고 바로 출근하라는 경우도 있었다”며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와도 남아서 근무를 하게 하고, 추가 검사를 받지 못하게 해 보건소의 관리감독을 피해 개인 연차를 사용해 쉬고 오라고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의료연대본부 소속 회원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보건의료·돌봄분야 현장실태 폭로 및 의료연대본부 긴급 요구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저질환자와 중증도가 높은 노인환자가 많은 요양원의 상황도 심각하다. 서울의 한 시립요양원은 입소자 300명 중에서 200명이 감염되고, 요양보호사 130명 중 90명이 확진되는 등 구성원 65%가 감염됐다. 울산의 한 구립요양원은 격리공간이 없는데다 병원이송이 안 되면서 구성원 98%가 확진된 사례도 있었다.

서울시립요양원에서 일하는 한 요양보호사는 “요양원 확진자가 병원 이송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 내부에서 치료회복을 해야 하다 보니 직원들 확진도 증가하고 돌봄 공백으로 연결되고 있다”며 “인력이 부족해 서울시나 관할 지자체에 긴급하게 대체근무 인력투입을 요청했지만, 지원을 받은 곳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간병인도 의료공백 탓에 극심한 차별을 겪고 있다. 간병인이 돌보던 환자가 확진되면 함께 코호트 격리를 해 7일동안 격리병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심지어 환자가 확진되면 감염 책임을 떠넘겨 받고, 간병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되려 치료비까지 요구받기도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문명순 서울희망간병분회장은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은 확진되지 않은 이상 병원 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받을 수 없어 멀리 떨어진 보건소까지 가야 해 시간적 부담이 크다”며 “요양병원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린 나머지 환자가 확진되어도 격리하지 않고 다인실에 두거나 확진된 환자와 확진되지 않은 환자를 함께 돌보고 있다”고 전했다.

박경득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장은 “2년 전부터 지금까지 의료진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대처방안은 변하지 않고 있다”며 △방역 완화지침 중단 및 방역지침 준수 지원 강화 △민간병상 확보 △의료·돌봄 인력 확충 △환자 및 현장 인력을 위한 안전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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