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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여성인권 대모’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 미국 연방대법관은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 열린 김소영 대법관(50·사법연수원 19기)과의 대담 형식의 강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소수자 보호와 인권 등을 주제로 열린 대담에는 현직 법관들과 변호사, 사법연수원생 등 600여명이 참석해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1960년대 미국의 여성인권은 유럽과 비교해 크게 뒤졌다. 미국 역시 맞벌이 여성이 저녁 늦게 퇴근해도 혼자 밥을 짓고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당시 미국도 남자가 독점한 분야에 여성이 조금씩 진출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고 법도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때부터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정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1996년 ‘사관학교에 남성만 입학할 수 있도록 한 교칙은 위헌’이라는 결정은 긴즈버그 대법관의 손에서 나왔다. 또 2007년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임금 격차와 관련한 소송에서 “현행법은 임금 차별소송을 제기하는 데 불리하다”는 소수의견을 제시, 2009년 ‘남녀 공정임금법’ 탄생을 도왔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판결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지만 기후에는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언급하며 법원도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대법관 역시 “법원이 시대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고 호응했다.
이상적인 대법원의 모습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다”고 답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나라마다 사회시스템과 법체계가 모두 다른데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다만 법관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법관들의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법조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달라는 질문에는 ‘끈기와 유머감각’을 강조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다. 그가 로스쿨을 수료할 때 미국 항소법원에는 여성 법관이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시어머니가 결혼 전날 행복한 혼인생활 비법을 알려 주신다고 부르시더니 ”가끔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주셨다“며 ”이 조언은 결혼생활 뿐 아니라 (남성 중심의 법조계에서)여성 법관으로 성장하는데도 큰 힘이 됐다“고 웃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지명으로 종신직 연방대법관이 된 후 22년째 재직 중이다. 지난 6월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서도 찬성 의견을 냈다. 2013년에는 미 연방대법관 중 처음으로 동성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서기도 했다.
3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긴즈버그 대법관은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문다. 전날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예방했고 이날 오전에는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