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60대 정모씨는 정치권에서 지역 화폐 방식으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주겠다는 소식을 듣고, 반기기는 커녕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작년에 모든 사람한테 재난지원금 줬지만, 우리의 상황은 똑같았다”고 토로했다.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열린 당 최고위에서 “코로나 백신접종으로 거리두기 완화 등 우리 국민의 일상과 경제활동이 회복되는데 발맞춰서 이제 올해 2차 추경이 마련된다면 우리 경제에는 특급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역 화폐 보편재난지원금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경제정책”이라며 “민주당의 적극적인 검토를 환영한다”고 밝히며 거들었다.
◇“손실보상부터”…자영업자·소상공인 ‘곡소리’
그러나 정작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냉담하다. 이들은 손실보상법 통과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언급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전모(78)씨는 “저번처럼 어려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주는 것이 맞다”면서 “우리부터 살려야지 피해가 없는 사람들에게 왜 돈을 주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인근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윤모(79)씨도 “코로나19 피해랑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지역 화폐를 지급해 경제 활성화하겠다는데 실질적으로 손해 본 부분을 보상해주는 것이 우리가 받은 타격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반대하진 않지만, 지금은 순서가 잘못됐다”며 “손실보상법도 아직 논의 등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은 코로나19 손실보상법의 입법청문회에서 암담한 현장의 상황을 전하고 손실보상법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당 법안은 소급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이견 벌어지면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에 계류 중이다
자영업자들은 향후 단체행동을 통해 정부와 국회에 항의할 방침이다. 한국유흥음식중앙회 등 단체도 오는 4일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집합금지 중단조치와 손실보상법 조속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보편지급 효과있을까…전문가 “효과 떨어져”
전문가들 역시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살리고 경기부양을 할 목적으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편적 재난지원금 자체가 들어간 예산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며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었다고는 하는데, 이 재난지원금으로 지출한 부분은 언젠가는 세금으로 다시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국민 재난지원금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세 부담을 줄이고 또, 국가 재정건전성을 확보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을 돕고 이들의 매출 회복 등의 이유로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하면 이는 비효율적이다”라면서 “선별지급을 통해 직접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줘서 이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5월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전체 투입예산 대비 매출 증대 효과는 26.2~36.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논의에 불을 붙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코로나19 한 가운데에서 생존을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이고 계신 소상공인·자영업자 분들의 그늘을 읽고 지켜드리는 것 보다 더 절실하고 시급한 민생은 없다고 믿는다”며 “지급 시기와 규모 등 축적된 데이터를 충분히 검토하고 현장과 국민 중심으로 신중하게 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