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조철현 부동산전문기자] “회사 보유분 선착순 특별분양”, “회사 보유분 마감 임박!”.
눈길을 확 사로잡는 문구다. 높은 청약경쟁률로 아파트 분양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때에 회사가 보유한 분양 물량을 푼다니 내 집 마련 수요자로선 구미가 당길 만하다.
요즘 들어 이같은 회사 보유분 아파트 분양 홍보 전단과 현수막이 부쩍 많아졌다. 분양 단지마다 구름 인파가 몰려 들어 청약에 당첨되기가 너무 힘든 서울·수도권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눈과 귀를 솔깃하게 하는 ‘회사 보유분’ 분양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포와 용인 등지의 분양 단지 모델하우스 외벽과 주변 지역에선 회사 보유분 특별 분양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회사 보유분 팝니다”… ‘미분양 털기’ 꼼수
‘회사 보유분 마지막 한정 특별분양’. 매혹적인 문구다. 그런데 회사 보유분이라고 해서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회사가 실제로 보유하던 것이든 청약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한 것이든 일반 미분양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회사 보유분이라고 홍보하는 물량 중 상당수가 ‘미계약분’이 아닌 ‘일반 미분양 물건’이라는 데 있다.
여기서 잠깐 용어 정리. 미분양과 미계약은 엄연히 다르다. 미분양분은 일반공급 2순위까지 청약 신청을 받았으나 공급 주택 수 대비 신청자가 부족해 발생한 물량을 말한다. 미계약분은 가점 항목 입력 오류, 재당첨 제한, 자격 미달 등의 사유로 부적격 판정된 물량과 예비당첨자 계약 이후 남은 잔여물량을 뜻한다. 중도금을 연체하거나 또는 내지 않아 계약이 자동 해지된 것도 미계약 물량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분양업자가 청약 순위 내에서 팔리지 않은 물건, 즉 미분양을 ‘회사 보유분’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미분양이라고 하면 뭔가 문제 있는 단지처럼 여겨지지만 회사 보유분이라고 하면 좀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리라.
회사 보유분은 주택시장이 활황이던 시절에는 ‘우량물건’으로 통했다. 일부 로열층을 임직원용으로 보유하거나 시공사나 하도급업체가 공사대금 대신 현물로 받은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분양 물량의 다른 말로 통하고 있다. 우량물건의 사후 처리가 아닌 미분양 내지 잔여물량을 털어내기 위한 판촉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회사보유분 특별분양 물건에는 잔금 유예와 입주 지원금 지급 등 사실상 분양가 할인 혜택이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분양 물량에 대해 이같은 혜택을 제공할 경우 이미 분양받은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칠 게 뻔하다. 이 때문에 건설사에서는 회사보유분 특별분양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포장해 한정된 소수 물량(미분양)에 한해서만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결국 회사 보유분이라면서 파격적인 할인 혜택까지 준다면 꽤 오랫동안 팔리지 않고 있는 악성 미분양 물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허점 투성이 미분양 집계… 회사 보유분 마케팅 부추겨
그런데도 회사 보유분 판촉 마케팅이 판을 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부실한 아파트 미분양 통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분양 관련 아파트 통계는 국토교통부가 관리한다. 그런데 집계 과정부터가 객관적이지 못하다.
미분양 통계는 주택사업자가 자진 신고한 숫자를 바탕으로 집계한다. 미분양은 팔리지 않은 재고로, 이는 향후 계약 실적과도 직결될 수 있는 영업 비밀에 속한다. 따라서 미분양 숫자를 정확하게 말해줄 주택사업자는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부실한 미분양 통계 탓에 회사 보유분이 시장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회사에 재고가 쌓여 있는데 어떤 이름을 붙여서라도 계속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 보유분은 회사가 진짜로 보유한 것이든 아니면 일반 미분양분이든 잔여 물량인 것은 사실이다. 만약 이 잔여 물건들이 우량 물량이었다면 분양 초기에 다 팔렸을 것이다. 따라서 분양사업자가 팔기 위해 잔여 물량을 홍보할 정도면 투자성이 떨어지는 물건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 회사 보유분이라는 말에 너무 현혹돼선 안된다. 어떤 이유에서 해당 물건이 잔여 물량, 즉 미분양으로 남았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