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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법무부, 외교부 등 8개 관계부처로 구성된 정부 대표단은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자유권규약 심의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1990년 자유권규약 비준 이래 정기적으로 규약 이행 상황 심의를 받았고 2015년 이후 8년만에 심의에 참여했다.
심의를 마친 위원회는 국가보안법 제7조를 폐지·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국보법 7조는 이적행위를 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소지·유포할 수 없도록 하며, 이를 위반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이 국보법 7조 폐지를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자유권위원회는 지난 2015년에도 자유권규약 심의를 진행한 뒤 ‘국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폐지를 권고했고, 2011년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회기에서 특별보고관은 “국보법 7조는 모호하고 공익 관련 사안에 대한 정당한 논의를 금하고 있다”며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유엔의 이번 폐지 권고에 대해 “한반도의 안보 위협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합법성과 필요성이 인정된다”면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처럼 법무부가 유엔의 권고를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는 배경에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시민사회, 인권단체 등 각계는 1991년부터 총 8차례에 걸쳐 국보법 7조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재는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 9월 8번째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는 “이적행위나 이적표현물의 제작 등으로 인한 위험은 언제든지 국가의 안전과 존립에 위협을 가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며 “중한 법정형으로 처벌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역시 옛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반미혁명 투쟁을 선동하는 노래를 부르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혐의로 전 파주시 의원 등 3명의 유죄를 확정하는 등 이 법을 지속적으로 인정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강경한 대북정책을 이어가고 있는데다 국제정세 불안과 함께 남북 관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국보법 7조 존속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 법무부는 “최근에도 북한의 계속되는 안보 위협이 있었고, 북한의 실체적 위협과 함께 다른 선진국가들도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형사법 체계를 구축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보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국보법 폐지 외에도 △사형제 폐지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 △명예훼손죄 비범죄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대체복무 기간 축소 및 복무 장소 확대 등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