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추모식은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유족,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참석자들은 추모식 이후 선생의 위패가 있는 충열대 무후선열 제단을 참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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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서북학회를 창립하는 한편 안창호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돼 인천 무의도에 유배되는 고초를 겪었다. 1912년 북간도로 망명한 뒤 김립, 계봉우 등과 광성학교를 설립해 꾸준히 민족주의 교육 활동을 전개했다.
1913년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거점을 옮겨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을 중심으로 조직된 권업회에 가담했다. 이상설, 이갑,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민족해방 투쟁활동에 투신했다. 1914년에는 중국 왕청현 라자거우의 한인촌으로 거점을 옮겨 대전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3·1운동 직후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문창범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대한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 동녕현에 임시군집부를 설치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8월 말에는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및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해 항일 독립전쟁을 전개할 독립군 양성에 헌신했다.
1921년 이후 국무총리직을 사임한 후에는 국민대표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전력했지만 1935년 1월 31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62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