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문주용기자]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시삼촌인 정상영 KCC명예회장측과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간의 대립에 여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 체제를 존중한다면서 일단 휴전에 들어간 듯하지만 이제 대립이 오너 아래로 내려온 느낌입니다. 산업부 문주용 기자가 현대 오너 일가들의 갈등에 대한 우려를 전합니다.
현대그룹이 갈등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3년전에도 그해 여름을 더욱 덥게 만들었던 현대그룹의 `형제의 난`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현대그룹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룹은 만신창이가 되고 오너 아래 전문경영인들은 `가신`이라는 오명의 낙인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기업이 도약을 서두를 때 현대는 자기 앞마당 빗질도 못할 만큼 정신이 없었습니다. 현대건설이, 하이닉스가 넘어지고, 계열사들이 쪼개져 팔려나갔습니다. 싸움은 오너들이 했지만 정작 많은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현대그룹의 성공 신화는 완전히 무너졌고, 그룹을 그룹답게 지켜주던 많은 고급 비지니스정보와 노하우들은 금융기관에 의해, 언론에 의해, 경쟁기업의 정보망에 의해 공중분해됐습니다.
경영권 분쟁을 지켜본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현대는 샅샅히 파헤쳐져 비밀이 완전히 없어졌다"며 "이는 헌대그룹의 가장 큰 피해물"이라고 개탄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오너간 싸움이 확산된데는 가신들이 오너들보다 더 나섰던 것도 한 이유입니다. 형제지간의 오너들은 감정을 억지로 자제하고 있었는데, 형제간 오랜 믿음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가신들은 오너의 등에 올라타서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니가 나가서 저 녀석을 상대하고, 또 너는 요 녀석을 상대하라`이라며 임직원들을 동원, 지휘를 했습니다.
중원은 피로 물들고, 땅바닥은 말라가고 민심은 동요했지만 싸움을 대신하는 가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너가 마음을 약하게 먹으면 안된다고, 형제지간의 인륜을 넘어 끝장을 봐야한다고 부추겼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끝장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인지.
이들 가신들이야 자기의 죄값을 치른다고 하더라도 그 아래 많은 임직원들은 현대를 떠나거나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이들은 현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필요한 핵심 요원들이 될 수 있겠지만 작아진 그룹의 규모로는 이들을 불러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당시 현대의 임직원들은 "우리같은 머슴들이 서로간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느냐. 제발 우리끼리는 다투지 말자"며 입사동기들끼리, 옛 계열사 동료끼리 자제를 호소하기도 했지만 싸움은 이들의 희생을 더 많이 요구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재현된 현대가의 오너간 갈등도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임직원들은 싸움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시삼촌과 조카며느리의 갈등을 한발 떨어져 지켜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3년전 그 싸움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범 현대가의 한 사람은 "오너간 싸움에 머슴같은 임직원들이 나서서는 안된다"며 "현대와 KCC간 임직원들의 신중한 처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강조합니다. 갈등이 불가피하더라도 3년전 그때처럼 가신들이 나서서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겉으로 봉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현대가가 3년전 잘못을 다시 반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근들어 정상영 KCC명예회장측과 현정은 현대회장측간에 오고간 얘기들이 감정의 골을 타고 범 현대가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고간 얘기들이 또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를 전달하는 임직원들의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식을 사지 못하게 했다느니, 서울에 남아서 사모펀드 준비를 했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갈등의 또다른 단초가 될만한 주장들입니다. KCC측이 몇몇 전문경영인들을 물갈이할 것이며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루머가 현대그룹 주변에 돌고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KCC 고위관계자는 임직원 메일을 보내 "주주로서의 책임에는 경영진의 비정상적인 경영활동을 견제할 책임과 함께 이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되어 있다"며 마치 이를 확인해주는 듯합니다.
3년전 정씨 형제간 갈등을 지켜본 기자의 눈으로는 이런 임직원들의 움직임이 스스로 갈등을 해소해가려는 오너들의 노력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이런 행동이 오너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일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들과 같은 임직원들이 상처를 입게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회사 경영에도 심각한 상처를 안기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현대에도, KCC에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은 일입니다.
현대그룹이나 KCC그룹의 임직원들은 이번 사태를 정씨 일가간 갈등으로만 보시고, 괜히 싸움을 부추기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오너들이 알아서 해결해라`라며 팔짱만 낀채 편들지않는 것이 빨리 사태를 해결시킬지 모릅니다.
끼어들고, 한마디 거들고 하다간 두 그룹 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겁니다. 3년전 사건의 교훈은 오너와 임직원까지 이전투구하는 싸움이 그룹을 끝장나게 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다치는 사람은 오너가 아니라 임직원들이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