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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없는 담합… 리니언시 도덕적 해이 초래 vs 흥정해서라도 근절

김상윤 기자I 2018.02.19 18:28:56

담합 주도자 면제주는 리니언시 재조명
공정위 조사 실효성 위해 고육지책 필요
리니언시만 의존 한계…검찰과 협력도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사회책임경영(CSR)으로 유명한 유한킴벌리는 23개 대리점과 함께 지난 2005년부터 10년간 공공기관이 발주한 마스크 등 구매입찰에서 ‘짬짜미’를 했다. 낙찰업체와 들러리업체, 투찰가격을 담합하면서 26건의 공급계약을 따면서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 제재에서는 담합을 주도한 유한킴벌리는 과징금과 검찰 고발 면제를 받았다. 사내 감사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먼저 담합 사실을 신고한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 혜택을 받은 것이다. ‘을’의 지위에서 유한킴벌리에 끌려간 대리점만 과징금을 부과받으면서 ‘뒤통수’만 맞은 꼴이 됐다.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할 경우 제재를 면제해주는 리니언시제도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서는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필요하지만, 유한킴벌리처럼 막상 불법행위를 주도한 업체는 공정위 제재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135억 원대 정부입찰 담합을 벌인 유한킴벌리 본사. 리니언시(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로 처벌은 면제받았다. 사진=연합뉴스
◇흥정해서라도 담합 근절해야..리니언시 효과적

19일 공정위에 따르면 리니언시 제도는 지난 1997년 도입된 이후로 담합을 적발하는 데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담합 사건의 80% 이상을 적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거를 제공하고 조사에 협조한 업체는 신고 순위에 따라 과징금을 전부 면제하거나 50% 감경해주는 혜택을 주지만, 이를 통해 범죄자끼리 ‘불신’을 조장하면서 담합 자체를 무력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담합이 합의 기록을 남기지 않고 대부분 교묘하고 은밀하게 이뤄지자 대부분 경쟁당국은 리니언시를 도입하고 있다.

문제는 리니언시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저지른 업체에 면죄부를 준다는 ‘국민 법감정’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담합을 주도한 업체는 과징금이나 고발에서 제외되고 들러리로 선 업체만 제재를 받다보니 기업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리니언시의 연원은 영국, 미국 등 보통법 제도에서 발전한 터라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 체계에서는 생소한 것도 사실이다.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권 폐지도 리니언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리니언시를 통해 담합을 적발하더라도 검찰에 고발을 할 경우 리니언시 자체가 무력화되기 때문에 공정위는 현재 유통3법(가맹법·유통법·대리점법)과 표시광고법 , 하도급법의 기술유용행위에 한해서만 전속고발권을 푸는 방향을 잡고 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리니언시는 해외 경쟁당국도 담합을 적발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는 수단이지만 범법한 업체에 면죄부를 준다는 정의론적 관점이 충돌하는 사안이기도 하다”면서 “두 가치를 비교해 특정 업체 봐주기보다 국가 전체 이득이 큰지 비용편익을 따져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리니언시 한계 있다…검찰과 협력 강화 필요

하지만 공정위가 리니언시에 의존하존하다보니 자체 과학적인 수사역량 강화는 도외시 한채 수동적으로 제재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리니언시만 기다리다보니 굵직굵직한 담합사건 조사도 공소시효에 임박해 겨우 검찰에 고발하다보니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갖고 있는 조사권한을 분산시키고 검찰과 협조를 통해 담합을 적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공정위가 피조사인의 협조를 전제로 한 임의조사권만 갖고 있는 터라 검찰의 압수수색권을 활용하면 은밀한 담합도 잡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우리와 제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국의 경우 가격 담합 등이 의심되면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BOJ) 그리고 FBI 등이 연합해 감청 등의 방식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공정위가 강제수사권이 없어 담합 적발이 어렵다면 검찰과 수시협력체계를 운영하다 검찰의 압수수색 등을 활용하면 된다”면서 “형벌에도 자수할 경우 감경제도가 있기 때문에 리니언시는 기술적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미국은 법무부가 담합을 적발하고는 있지만, 이중 80%이상은 리니언시를 통해 적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리니언시를 인정하지 않으면 담합 조사가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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