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때 가족과 헤어진 진명숙(66)씨는 5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62년 만에 극적으로 가족과 상봉해 들뜬 마음으로 이같이 말했다. 큰 오빠 정형곤(76)씨와 그의 가족들은 진씨를 만나자마자 서로 끌어안아 등을 토닥였고 화상 통화로 만난 작은 오빠 정형식(68)씨는 말을 아끼며 여동생을 지그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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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여름. 진씨는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작은 오빠를 따라나섰다가 그대로 가족과 이별했다. 당시 작은 오빠는 진씨를 근처에 맡겼다고 생각했지만, 진씨가 오빠를 찾아 나서면서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큰 오빠 정씨는 “(둘째) 동생이 본인 때문에 (명숙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그래서 먼저 명숙이를 찾아 나서 유전자 채취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잃어버린 상황이라 부모님도 (명숙이를) 찾고 싶은 마음보다는 죄책감이 더 컸다”며 “그 시절엔 더군다나 여자 혼자 살기가 쉽지 않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 걱정이 컸다”고 회상했다.
가족을 잃어버린 진씨는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소재 보육원을 거쳐 충남에 거주하는 한 수녀에게 입양돼 생활했다. 현재 진씨는 남편,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가족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작은 오빠 정씨는 “옛날에는 명숙이가 말이 없었다”며 “다른 사람과 얘기 안하고 저하고만 얘기했는데 기억하려나 모르겠다”고 장난 섞인 목소리로 첫마디를 꺼냈다.
주변 가족들은 진씨의 아들과 작은 오빠 정씨가 닮았다며 연신 감탄을 쏟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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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어린 나이였던 진씨는 성(姓)은 기억하지 못하고 이름만 알고 있어 가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명숙아, 명숙아’라고 부르는 탓에 성을 기억하지 못한 것. 보육원 수녀님의 성을 따서 진씨로 살아왔지만, 가족을 찾기 위해 경찰서와 방송국을 방문해도 ‘이름 석 자를 모르면 찾기 어렵다’는 대답뿐이었다.
진씨는 포기하지 않고 2019년 11월쯤 경찰에 신고한 뒤 유전자 등록을 실시했다. 장기 실종자 발견을 담당하는 경찰청 실종가족지원센터는 2014년 채취된 작은 오빠 정씨의 유전자를 토대로 실종 신고된 목록을 찾다가 비슷한 대상자를 추릴 수 있었다.
진씨는 “가족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유전자를 등록한 덕분에 기적처럼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오빠 정씨는 “동생을 찾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했는데, 유전자 등록 덕분에 결국 동생을 찾을 수 있었다”며 “기적 같다”고 말했다.
이희진 경찰청 실종정책계장은 “30년~40년이 되면 얼굴이 다 변해서 결국은 유전자가 마지막 희망”이라며 “이름을 몰랐지만, 실종경위, 발생지역, 일시 등을 바탕으로 추적하다 보니 가족으로 보이는 연관성을 발견해 유전자 재채취로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둘째 오빠 정씨가 캐나다 앨버타주에 거주하고 있어 유전자 재채취가 어려울 법했지만, 지난해 1월부터 경찰청에서 외교부, 보건복지부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해외 한인 입양인 유전자 분석 제도’가 한몫했다. 현재 14개국 34개 재외공관에서 운영 중인 해외 한인 입양인 유전자 분석 제도를 통해 주 밴쿠버 총영사관에서 둘째 오빠 정씨의 유전자를 외교행낭을 통해 송부받았다.
진씨는 “무엇보다 가족여행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이미 1980년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는 뵙지 못한 사실에 아쉬움을 표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진씨 여동생에게도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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