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기자들의 이목은 국정 난맥상으로 불거진 ‘인적쇄신론’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에 쏠렸다. 전날(11일)까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낳은 문건유출 파문에 이어 김영한발(發) 항명 사태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의 경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기춘+3인방에 ‘무한신뢰’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25분간에 걸친 담화 첫머리에 “이번 문건 파동으로 국민 여러분께 허탈함을 드린 데 대해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고 사과만 했을 뿐 김 실장과 3인방, 국면전환용 개각 등 어떠한 인적쇄신도 당장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은 측근들의 경질을 통한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인적쇄신은 없다는 기존 소신을 다시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핵심부에서까지 인적쇄신 요구가 빗발쳤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쇄신 인식이 국민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더 나아가 김 실장과 3인방에 대한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김 실장은 “정말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평가했고 3인방에 대해서도 “묵묵히 고생하며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런 비리가 없으리라고 믿었다. 이번에 대대적으로 (검찰이) 뒤집는 바람에 ‘(비리가) 진짜 없구나’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신뢰’를 넘어 ‘애정’까지 묻어났다는 평가다.
◇‘자기방어’에 상당수 할애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회견 내내 ‘자기방어’에만 몰두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건 파문과 항명 사태의 진원지가 청와대였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인사가 없어 차가워진 여론의 시선을 분산하겠다는 의도로 비쳤다. 박 대통령이 지휘책임과 내부 암투에 대한 심각한 인식보다는 일부 잘못된 공직자의 일탈로 규정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자기의 개인적인 영리, 욕심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을 이간질해서 뭔가 어부지리를 노린 것”이라는 등의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모든 언론이 ‘항명’(抗命)으로 규정한 ‘김영한 사태’에 대해서도 오직 박 대통령만은 “항명 파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갈한 것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박 대통령은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저는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지난 2년 동안 민생 현장이나 정책현장을 직접 가서 터놓고 전부 이야기를 듣고 의견도 듣고 내 생각도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당정 관계에서도 “당의 의견을 존중하고 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왔다”고 했다.
◇소통의 90분 vs 불통의 90분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회견을 두고 소통의 90분이 아닌 ‘불통의 90분’이란 지적이 거세게 나온다. ‘인적쇄신’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지 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내놓은 청와대 조직개편에 대해 “특보단 신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인적쇄신론 거부가 일종의 ‘마이웨이식 행보’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큼에 따라 집권 3년차 국정운영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에 대한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면 국회는 물론 대국민 협조가 불가피한 상황인데도 박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인식에 간극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면전환용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확인된 것은 향후 국정운영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인적쇄신이나 시스템 개혁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지 못한 점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