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토요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로 휴대전화 소액결제, 통장 잔고털이까지 당한 A씨. 명의 도용으로 알뜰폰 무단 개통이란 피해까지 입은 걸 알게 되자 서둘러 kt스카이라이프 고객센터에 전화했지만 기계 안내음만 나오자 분통이 터졌다. 알뜰폰은 국내 이동통신 3사와 달리 당사자 동의 없이 손쉽게 개통되지만 주말에 상담원 연결이 아예 불가능했기 때문에, A씨는 속앓이를 하다 월요일 오전에야 겨우 무단 개통된 알뜰폰 3대를 해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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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A씨가 당한 보이스피싱은 “아빠, 나 폰 액정 깨졌어”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자녀 사칭’ 수법이었다. A씨는 그날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수리를 해야 하는데 보호자 정보가 필요하다’는 아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낯선 전화번호로 온 메시지였지만 친구 전화를 빌려 메시지를 보낸다는 거짓말에 속았다. A씨는 신분증과 신용카드 사진,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넘겼다. 이후 피싱 일당은 A씨 휴대전화로 100만원을 소액결제하고, 오픈뱅킹 가입을 통해 A씨 명의의 농협과 우리은행 통장에 있던 520만원을 한꺼번에 이체하는 등 총 620만원을 가로챘다.
A씨는 신분증 도용으로 알뜰폰 3대가 무단으로 개통되는 ‘2차 피해’도 입었다. 피싱범들은 선불 알뜰폰이 비대면으로 개통할 수 있어 보안에 취약한 점을 노렸다. A씨 측은 “주말 내내 상담원 연결은커녕 불친절한 ARS 안내 멘트만 반복적으로 나왔다”며 “고객 입장에서 소액결제가 차단된 것인지, 더 피해는 없는지 알 길이 없어 겨우 평일이 돼서야 도용된 휴대전화를 해지했다”고 토로했다.
알뜰폰 부정 개통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 몫이다. 소액결제를 비롯해 카드 대출을 받는 등 금융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클 뿐만 아니라 금융 사기나 국제 문자 발송 사이트에 가입해 국내에 무작위로 ‘미끼문자’를 발송하는 등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
이와 관련한 이데일리 취재가 시작되자 kt스카이라이프 측은 고객센터 ARS 안내가 미흡했다며, 시스템을 수정 조치했다. kt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ARS 통해서 일시·분실 정지가 가능하게끔 준비했는데 안내 멘트가 나가지 않았던 상태였고 관련 멘트를 추가했다”며 “일시·분실 정지 문의는 주말에도 밤 10시까지 고객센터 상담이 가능하고, 그 외 시간에는 ARS 서비스를 통해 정지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손쉬운 알뜰폰 개통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되고 있어 보안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통신 3사 후불 유심폰은 고가인데다가 소비자 동의 없이 개통하면 통신사 책임이라 개통 심사가 까다롭다”며 “반면 알뜰폰은 중고 휴대전화에 선불 유심만 끼워 넣으면 되는 식이라 통신사가 손해 보는 게 없고, 개통도 신분증 스캔만 거치면 된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요즘 기업들이 인건비 생각해서 ‘인공지능(AI) 상담원’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범죄 탓에 정신없는 소비자들은 당황할 수 있다”며 “편리함과 수익 추구 뒤에는 항상 사건·사고가 일어나는데 알뜰폰 업체들은 수익에만 연연 말고 고객센터 24시간 상담 등 보안에도 신경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달 25일 A씨가 접수한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에 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등 피의자 추적에 섰다.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금융사를 통해 통장의 잔고가 어디로 출금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등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