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돈으로 주식·가상화폐 투자…P2P대출 20개사 사기·횡령 '무더기 적발'

박종오 기자I 2018.11.19 12:00:30
자료=금융감독원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P2P(Peer-to-Peer·개인 간) 대출 업체인 A펀드는 투자자 자금을 모아서 그 돈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고객의 돈을 멋대로 유용한 것이다. B펀드는 태양광 사업권을 갖고 있다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이를 근거로 투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실제 이 회사는 사업권을 보유하지도 않은 채 허위 공시를 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허위 상품 등을 앞세워 투자자 돈을 유용·횡령해 쌈짓돈처럼 사용한 P2P 업체 20곳이 금융 당국 검사에서 적발됐다. IT(정보·기술)와 금융을 결합한 ‘핀테크’로 주목받았던 P2P 시장의 부실한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현재 확인된 투자자 수만 명의 피해액만 1000억원 이상인데 일부 업체가 여전히 영업하고 있어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9월 P2P 연계 대부업체 178개사(5월 말 기준)를 대상으로 대출 취급 실태를 점검한 결과 20개사에서 사기·횡령 혐의를 적발했다고 19일 밝혔다. 9개 중 1개 회사 꼴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윤창의 금감원 부원장보는 “아나리츠·루프펀딩·폴라리스펀딩 등 20개 업체를 검찰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말했다.

P2P 대출은 돈이 필요한 사람과 빌려주려는 사람을 온라인에서 직접 연결하는 신종 금융 서비스다. 금감원은 P2P 업체를 직접 관리·감독할 근거법이 없는 탓에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P2P 업체의 대부업 자회사 전체를 상대로 현장 검사를 벌였다.

검사 결과 20개사는 모두 가짜 투자 상품과 담보 등을 앞세워 투자금을 모은 뒤 다른 사업에 쓰거나 회사 운영 경비, 개인 용도 등으로 사용했다. P2P 회사인 C펀드와 D펀딩은 출입로가 막혀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한 맹지를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장으로 속여 고객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았다. E펀딩은 가짜 골드바를 대출 담보로 삼았고, F펀딩은 회사 직원과 친구를 대출자로 속여 투자금을 모집했다.

일부 회사는 있지도 않은 부동산과 태양광 등 동산 담보권, 사업 허가권을 보유한 것처럼 홈페이지에 허위 공시했다. 이성재 금감원 여신금융검사국장은 “대다수 업체가 모집한 투자금을 다른 대출 돌려막기나 다른 사업 운영비 등에 유용했다”며 “일부 회사는 소유주가 주식 투자에 쓰거나 가상화폐 투자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허위 상품으로 투자금을 모집하다 보니 새로운 투자자 돈을 모집해 기존 투자자 돈을 갚는 ‘돌려막기’가 판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사기·횡령을 저지른 후 다른 회사를 차리거나 회사를 옮기며 사기를 벌인 사례도 있었다.

자료=금융감독원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부실 가능성이 큰 고(高)위험 상품을 취급하는 회사도 많았다. 만기가 6~26개월로 긴 편인 PF 대출을 2~6개월 단위로 쪼개 팔거나 부실이 발생한 부동산 담보 채권 여러 개를 구조화 상품에 하나로 묶어 담은 후 안전 자산이라고 속여 판매한 경우 등이다. 적발된 20개 회사를 포함해 상당수 P2P 업체는 연체가 생기면 자기 자금이나 다른 사업 자금으로 돌려막아 건실한 업체로 위장하고 투자 건당 6~10%의 고이율 경품을 주겠다며 투자자를 꾀었다.

문제는 이처럼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해도 이를 예방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이 P2P 업체를 직접 검사·감독하려면 근거 법이 필요하나 현재 P2P 금융을 다루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금융위에 등록한 P2P 연계 대부업체는 지난 9월 말 현재 193개사로 대출 잔액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161개 회사의 경우 PF·부동산 담보 대출 등 부실이나 허위 상품 위험이 큰 부동산 관련 대출이 전체 대출 잔액 1조907억원 중 65.1%인 7105억원에 이를 정도로 쏠림이 심한 반면 대출 심사 인력은 평균 2.9명 정도로 영세한 실정이다.

특히 법제화 지연으로 실효성 있는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탓에 사기·횡령 등 업체 불법 행위로 피해를 당하면 개인이 법적 소송을 하는 것 외에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 이 국장은 “내년에도 추가로 10개 회사 정도를 현장 검사할 예정”이라며 “지금은 금감원의 감독·검사권이 없는 만큼 국회의 관련 법제화 논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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