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김형욱 기자] “회사의 미국 사업구조를 아예 바꿔야 할까요? ”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더블트리호텔에서 미한국상공회의소(KOCHAM) 주최로 열린 미국 세제개편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한 한국 기업 관계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트럼프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미국’을 만들겠다며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 35%에서 21%까지 끌어내리는 세제개편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작 미국에서 사업하는 한국의 기업들은 ‘그들만의 잔치’에 끼지 못한다. 한국의 본사와 거래가 많은 미국의 한국법인들은 트럼프 정부의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희생양이다.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인하와 함께 세원잠식남용방지세(Base Erosion and Anti-Abuse Tax), 이른바 ‘BEAT세’를 도입했다. 해외 관계사와 거래가 많은 미국 회사가 과도한 로열티 지급 등으로 미국의 이익이 외국으로 빠지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한국 본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업구조를 가진 한국의 미국법인들은 BEAT세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본사로 보내는 로열티나 이자비용 등이 많은 한국의 미국법인은 법인세 외에 추가적인 BEAT세를 내야한다.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은 “한국의 주요 미국법인 대부분이 BEAT세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BEAT세를 피하려면 한국 기업의 미국 사업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한국 본사의 의존도를 줄이고 한국으로 보내는 로열티를 낮추고 미국 사업의 자체 비중을 늘려야 한다.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빼 가지 말고,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라는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압력이다.
미국이 처음으로 국경의 개념을 집어넣은 ‘영토주의(territorial system)’ 과세체제로 일부 전환한 것도 파장이 심상치 않다. 미국은 한국, 중국, 인도 등과 함께 대표적인 국제주의 조세체계(worldwide system) 국가였다. 영토의 개념이 없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계사에 대해서도 과세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해외 관계사가 미국 본사로 보내는 배당금에 대해 법인세를 전액 공제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미국이 영토주의 과세체계로 전환했다는 뜻이다.
국제주의 조세체계에도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각종 수법을 동원해 과세를 피하고 해외에 막대한 이익을 쌓아두자, 아예 기업 하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해외 이익을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현실적인 전환을 선택한 것이다.
국제주의 과세체계를 고수하는 국가는 이제 소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에서 한국을 포함해 7개국만이 국제주의 과세체계다. 미국이 영토주의 과세로 돌어서면 한국은 외딴 섬에 갇히게됐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 정부와 달리 최근 초대기업에 한해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더 높였다. 한국도 과세체계 변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