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세계 1위 기업이라는 명성보다 일할 맛 나는 회사, 신바람 나는 회사, 내가 믿고 기대고 내 땀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회사로 만드는게 더 중요하다.”
‘20여년만에 파업 위기에 처한 노사관계를 회복하라’는 특명을 받은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인사발령과 동시에 취임식도 갖지 않고 바로 울산현장으로 달려가 출퇴근때마다 정문에 나와 조합원들에게 회사의 사정을 호소하고 보다 나은 조건을 약속을 했다. “회사가 직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안타깝다”며 “책임을 다할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있지만, 상황은 반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랜기간 ‘무파업’의 길을 걷다가 한번 일어선 노조의 기세가 쉽사리 꺾일 것 같지 않다. 지난 19일에는 서울 계동 서울사무소까지 노조 지도부가 달려와 20여년만에 상경 집회를 했다. 노조 측은 “위기의 실상이 구시대적인 노무정책과 비정규직 고용구조, 문어발식 그룹 경영구조에 있다”면서 “이 모든 책임과 해결은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만간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파업을 어떤식으로 할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르면 내주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올해만 3조원이 넘는 사상 최악의 영업적자에 임원 30% 이상을 감원하는 칼바람이 불었지만, 한번 터져나온 노조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적자는 특수선박과 난이도가 높은 선박을 수주 받아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충당금 등을 감내하면서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데 따른 것이다.
노조측도 할 말이 많다. 저가수주와 방만경영에서 비롯된 대규모 적자를 왜 노조 탓만 하냐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2008년 현대중공업이 KCC와 합작으로 각각 49%와 51%의 지분을 출자해 폴리실리콘 회사를 설립했지만 5년만에 공장가동을 중단했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결국 야심차게 시작한 태양광 사업은 지분을 모두 소각하고 파트너인 KCC에 넘기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듯 잘 나갈 때는 숫자놀음만 하다가 ‘이제와 남탓(노조)이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선업에 닥친 현실이 너무나 엄혹하다. 한·중·일 3파전에서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선가는 높고, 정부 지원이 일본보다 약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에 처해있다. 그렇다고 벌크선을 버릴 수도 없고, 친환경 고부가가치선 및 해양플랜트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술 개발에 온힘을 쏟아야할 때다.
건곤일척의 대전(大戰)을 앞두고 내분으로 전력을 잃으면 ‘생존’마저 위협받는다. 노조가 방만한 경영과 판단 잘못만 탓하면서 내 몫 챙기기에만 힘쓴다면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는 것과 다름없다. 더 실기하기 전에 윗선부터 도려내는 대수술을 시작한 경영진에게 이제는 노조가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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