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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금융당국 및 국회에 따르면 이날 진행된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2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날 오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관련 국회 본회의 표결 일정이 잡히면서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못하고 짧게 정리됐다. 가상자산 관련법, 보험사기 방지법도 상정은 됐으나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고, 이날 법안 17건 중 3가지 정도 안건만 의결되고 끝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실손 청구 간소화 관련 보험업법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논의 안건 5번으로 앞순서에 배정됐지만 최종 안건 조율과정에서 아예 안건이 빠져버렸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가입자의 요청을 받아 보험금을 전산으로 바로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보험계약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의료기관에서 일일이 받아 보험사로 전송하는 번거로움을 없애자는 내용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법안은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라고 권고한 뒤부터 매년 관련 법안이 발의돼왔다. 하지만 의료계에 강한 반대에 부딪혀 14년간 갈등만 겪고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6개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실손 청구 간소화법이 안건에서 빠진 이유는 의협의 여전한 반대가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의협은 실손 청구 간소화가 추진된 시점부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의료정보 유출, 의료인 업무 과다 등에 대한 우려가 이유다. 정보 집적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위탁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온 뒤부터는 비급여 진료 정보를 심평원에서 접근할 수 있어 진료 자율성이 빼앗길 수 있다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지난달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이 지난달 25일 열린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더는 늦출 수 없다. 의료계가 이를 거부한다면 입법으로 처리할 것”이라며 압박강도를 높이자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법안 통과 반대를 외치던 대한한의사협회가 기존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찬성으로 돌아선 것도 긍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정보집적 기관에 심평원이 아닌 보험개발원, 신용정보원 등이 등장하며 대안도 마련됐다.
하지만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법안소위 안건에 오르기 전 여야에서 조율이 덜 된 상태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입법 처리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의협 쪽 반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부 의원들도 강행 처리하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의료법 등을 저지하는 의료단체의 시위도 국회에서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의사들은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 취소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6일 국회 앞에 모여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 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손 간편 청구화법까지 강행하기엔 국회의 부담이 컸다는 의견이다.
일단 국회는 강행 처리보다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8자 협의체를 통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에 나설 전망이다. 참여의지가 없던 의협도 8자 협의체 참여를 통해 입법 강행을 저지할 시간을 벌었다. 8자 협의체는 △금융위원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의협·금융위 추천 소비자단체 △보험업계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이 참여하게 되며 내달 9일 첫 회의를 진행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업계에서는 이번이 가장 최적의 타이밍이었는데 국회 쪽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또다시 공회전을 계속하게 되는 모습이 됐다”며 “8자 협의체가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 모르지만 일단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