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30일 오전 9시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원내대책회의. 예정시간을 약간 넘겨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급히 뛰어들어왔다. 회의를 주재하는 이완구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특위 위원장직 때문에 간 줄 알았다”고 농을 던졌다. 주 의장도 애써 씩 웃어보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위원장직을 고사했던 그는 결심이 선 듯했다.
주 의장이 곧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어렵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면서도 “또다른 일이 닥쳐오는 것 같다”고 했다. 억지로 떠밀려 강제로 맡았다는 점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연금 생활자라는 점 △지역구에 퇴직 교육자가 많다는 점 등을 언급하면서, 그간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역사적 과업이다. 그 필요성은 우리사회 어느 누구도 공감할 것이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에서 세차례나 무산됐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주 의장의 이날 발언은 그 이유를 가감없이 보여줬다. 각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표심(票心)’ 때문에 개혁을 껄끄러워하고, 이는 곧 개혁을 위한 당의 대오가 흩뜨러져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버팀목인 중진 의원들 중 공무원연금 개혁에 앞장서는 인사는 찾기 힘들다. 그나마 김무성 대표가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을 뿐이다. 당 핵심관계자는 “TF 몇몇 의원만 빼고 다 ‘나몰라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의원들 각자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의원들 스스로 다 버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겨우 개혁이 가능할 것이란 점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표면적 이유는 ‘돈(재정)’이지만, 결국 본질은 사회 전반의 ‘공감’이다. 공무원연금이 반드시 척결해야 할 악(惡)이라고 하기엔 이에 목을 메는 서민들이 너무 많다.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애국심을 발휘해달라’는 여당의 설득이 애초 무리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입법 공무원은 “이런 일방적 개혁은 성공해도 후유증만 남을 것”이라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국회의원들이 왜 지역구 예산을 함께 줄이겠다는 선언을 못하는가. 새누리당 개혁안의 재정절감 효과를 기계적으로 따져보면, 한해 5조5000억원 정도 된다. 공무원연금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국회가 지역구 SOC 예산 등을 더 줄이는 ‘예산 개혁’에 나선다면, 공무원들의 마음도 더 열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올해 예산정국에는 재정부족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쪽지예산’들이 난무했다. 이래서야 공무원들의 마음이 움직이겠는가.
새누리당의 특위위원장 해프닝을 지켜본 새정치연합 공적연금특위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새누리당은 연금 개혁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개혁안을 내놓지 않는 야당도 문제지만, 내부에서 ‘폭탄 돌리기’를 하는 여당도 문제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고 했다. 새누리당이 역사적 과업을 해내려면, 아직도 내려놔야 할 게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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