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여야간 정치개혁 논의가 더 꼬이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의 빅딜을 제안한 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화답하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 했으나, 후속 협상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자문기구 방안이 제시돼 실타래가 더 꼬이는 모양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회는 10일 정의화 의장에게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도입, 개방형 경선제를 포함한 상향식 공천의 제도화, 선거권 확대,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완화 등 8개항의 개혁방안을 보고했다.
◇의장, 자문위 제안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 정의당 ‘개악’ 발끈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국회에 제안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는 다른 제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의원정수 300명을 권역별로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한 뒤 권역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할당 정당별로 의석수를 확정한 후 지역구 당선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비례대표 명부순위에 따라 당선인을 결정한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의원정수를 권역별로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은 같다. 다만 의원정수 300명을 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4명을 유지하는 전제에서, 해당 권역의 정당 득표율에 따라 권역별 비례대표만 결정하자는 것으로, 현 비례대표 제도와 큰 차이가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표의 등가성 제고를 위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포함해 권역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문위는 현행과 같이 비례대표 의석수를 54석으로 유지하더라도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양대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수가 1∼2석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약세 지역에서는 최소 1석에서 4석까지 비례대표 의석을 획득해 지역주의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단점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기득권 구조에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번 보고서는 정치개혁을 위한 중요한 개혁방안들을 다뤘지만 우리 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본질적 부분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 아쉽다”며 “우리 사회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서는 양당제보다는 다당제가 바람직한데,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양당제가 더욱 고착될 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자문위 개혁안이 공개되자 정의당이 발끈했다. 심상정 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자문위안은 승자독식을 더욱 더 강화하고 결국 양당의 독점정치를 더 강화하는 개악 보고서”라며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를 후퇴시키는 제도로 소수정당의 경우 각 권역별 커트라인에 걸려 한 석도 배정 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간사 12일 접촉, 야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검토 안해
논의할 과제가 쌓여 있지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간사 접촉이 12일 예정돼 있을 정도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당 지도부가 정개특위 여당 간사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아 협상이 겉돌고 있다며 여당에 책임을 돌렸다. 문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조우한 김 대표에게 “(정개특위에) 재량 좀 달라”고 요청했다.
정개특위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은 “지금까지는 아니었다. 12일 만나보면 (재량권을 줬는지)알겠죠. (자문기구가 제안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검토한 바가 없다”며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는 함께 검토할 수 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개혁을 위해 오픈프라이머리까지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논의하자고 하면서도, 여전히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개특위 간사에게) 재량을 주고 있다”며 “의장 자문위안도 정개특위에서 논의해야 한다. 정개특위에서 관련된 모든 걸 논의하라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황진하 당 사무총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공천제는 다른 제도와 타협하거나 협상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당의 분명한 입장이다. 문 대표가 빅딜을 제의한 상태인데, 이것은 비례대표제 도입취지의 퇴색, 불가피한 의석수 증가 가능성, 소지역주의 등장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예측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태에서는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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