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재력·부동산이 갈랐다"…출발선에서 벌어지는 자산 격차

양지윤 기자I 2026.02.19 09:46:24

보사연 "자산 격차, 생애 초기 자산 보유 여부가 좌우"
"부동산 없는 상태 부채, 자산 축적에 불리"
"생애주기 관점서 자산 형성 지원책 마련해야"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한국 사회의 자산 격차가 개인의 소득이나 저축 습관을 넘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과거에는 일해서 모은 돈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생애 초기 자산 보유 여부와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 부채 활용 방식이 부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챗GPT)
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자산 격차 요인 분석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한국의 자산 격차는 생애 초기 자산 보유 여부와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를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으며 소득만으로는 이 차이를 좁히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은 소득과 함께 개인이나 가구의 경제적 안정성과 생활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단순한 경제적 여력을 나타내는 지표에 그치지 않고 이혼이나 실업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한국의 자산 분포는 현재 불균등한 구조를 띠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상위 10% 고자산가의 자산 점유율이 65%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상위 10%와 1%의 자산 점유율이 감소하는 추세와 반대되는 흐름이다. 또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인 덴마크나 인접 국가인 일본보다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한국의 자산 격차를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는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자산 구조와 대출을 통한 자산 증식 행태가 꼽힌다. 청년기 자산 형성 초기 단계에서 부동산을 취득했거나 상속·증여를 받은 집단은 이후 생애 전반에서 자산 축적 우위를 유지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반면 부동산이 없는 상태에서 부채를 보유한 경우 자산 축적 경로에서 지속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채는 자산 격차를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구진이 가계금융복지조사와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을 보유한 집단에서는 대출을 활용한 자산 증식이 가능했다. 그러나 부동산이 없는 상태에서의 부채는 오히려 자산 축적을 제약하는 요인이 됐다. 같은 부채라도 출발선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자산 격차는 인구 사회학적 특성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자산 상위층일수록 가구주의 연령과 교육 수준이 높고, 상용직 임금근로자나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았다. 반면 한부모 가구, 장애인 가구, 임시·일용직 근로자 등은 자산 하위 분위에 집중돼 자산 측면에서도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 비교 분석에서도 자산 격차는 거시경제 변수보다 제도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패널 분석 결과 사회지출과 사적연금 자산, 재산세는 하위 계층의 자산 점유율을 높이고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반면 실업률과 가계부채 증가는 하위층 자산 축적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고서는 자산 격차 완화를 위해 소득 중심 복지정책에서 벗어나 생애주기 관점의 자산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기의 자산 형성 지원, 중장년기의 안정적 축적, 노년기의 자산 활용과 보호를 연계하고, 상속·증여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영석 보사연 원장은 “자산 격차는 시장의 자율적 조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며 “소득 보장 중심의 복지 체계를 넘어 자산의 공정한 형상과 분배를 지원하는 포괄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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