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산속 태풍에서 모녀 3대 구한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17)

이연호 기자I 2024.02.29 16:50:06

부산 금정소방서 정해교 소방관, 2022년 9월 18일 오후 7시께 산악 구조 출동
태풍 난마돌 탓 강풍·폭우 등 악조건…좌표값도 계속 오류 나며 전전긍긍
"어린이 울음소리에 더욱 조급해져"...3시간 넘는 수색 끝 극적 구조 "건강한 모습에 감사"
"대형 사고 발생 시 구조 성공하면 ...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한다.

정해교 소방관 등 부산 금정소방서 소방관들이 지난해 9월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 온천천에서 급류에 고립된 시민을 구조하고 있다. 사진=정해교 소방관 제공.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지난 2022년 9월 18일. 제14호 태풍 난마돌(NANMADOL)의 영향으로 오후 늦게부터 부산에도 강풍과 함께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산 금정소방서 정해교(53) 소방관은 긴장 속에서 출동 대기를 하고 있었다. 태풍이 오면 아무래도 크고 작은 구조 출동이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 7시 2분께 산악 구조 출동 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인근 금정산에서 모녀 3대가 길을 잃었다는 신고였다.

당시 바깥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비바람에 외부 활동은 사실상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날 오후 비가 오기 전 금정산 등산에 나섰다 등산로를 잘못 접어든 모녀 3대가 어둠이 내린 산에서 강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자 겁에 질려 거의 울다시피 119에 신고를 한 상황이었다. 60대 여성과 그의 30대 딸 그의 초등학교 저학년 손녀가 정 소방관 등 금정소방서 구조1팀 대원들의 구조 대상자였다.

휴가자를 제외한 구조1팀 5명 전원은 마음이 더욱 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정 소방관은 헤드 랜턴 등 충분한 랜턴을 준비한 채 신속히 펌프차에 올랐다. 정 소방관은 출동 중 상황실과 무전을 주고받으며 구조 대상자들의 위성항법장치(GPS) 좌표값을 받았다.

구조1팀 대원들은 금정산 입구에 내리자마자 산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오르기 시작했다.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비바람도, 태풍에 쓰러진 잡목과 풀들이 무질서하게 우거진 산길도 정 소방관의 실종자 수색에 대한 의욕을 꺾을 순 없었다.

GPS 좌표값인 금정산 장군봉 등산로 인근 고압선 철탑 인근에 도착했으나 실종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 소방관은 다시 상황실에 연락해 좌표값을 받고 재수색에 나섰다. 그때 상황에 대해 정 소방관은 “워낙 일기가 안 좋아서 좌표값이 자꾸 안 맞았다. 좌표값 가까이 이동했다 싶은데 실종자들이 보이지 않아 상황실에 전화해 물어보면 좌표값이 바뀌고 또 바뀌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강한 비바람에 좌표값이 계속 오류가 나자 정 소방관 등 구조 대원들은 원위치로 되돌아가서 재수색하기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더이상 GPS 좌표값은 의미가 없었다.

정 소방관은 실종자이자 최초 신고자인 30대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통화 중 옆에서 30대 여성의 어린 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 소방관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리 구조 대원들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저체온증이나 쇼크가 오지 않을까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구조1팀 대원 5명은 2개 조로 나눠 산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소방관들도 사람인지라 급격히 육체적으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다 젖고 일부 대원들은 탈진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 소방관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모녀 3대를 생각하면 그런 고생은 고생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늘도 정 소방관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정 소방관은 무려 3시간 넘는 수색 끝에 결국 구조 대상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녀 3대는 정 소방관을 보자마자 일제히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섧게 울었다. 정 소방관은 그때의 심정에 대해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모습에 정말 다행이란 생각부터 들었고 감사했다. 그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며 “팀원 전원이 악조건에 고생을 했지만 건강한 구조 대상자들의 모습과 감사의 눈물을 보니 힘들었던 수색 과정은 말끔히 다 잊혀졌다. 구조 대원이라는 직업에 다시 한 번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29년차 베테랑 구조 대원인 정 소방관에게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냐고 물었다. 그는 “큰 대형 사고가 났을 때 밤새고 하면 육체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지만, 거기서 내가 구조한 사람이 살아나면 그때는 힘듦은 말끔히 사라지고 행복한 감정이 벅차오른다”고 했다.
정해교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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