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 헌소 4년 심리…헌재, `각하` 결정한 이유는

박일경 기자I 2019.12.27 17:06:44

외교 정책적 판단 `정치 영역`…"위헌 심판 대상 아냐"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 위헌심판 청구 각하
추상적·선언적 내용의 `비구속적 합의`
"배상 청구권 등 기본권 침해 가능성 없어"

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헌법소원 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박근혜 정부 당시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는 위헌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일경 남궁민관 기자] 헌법재판소는 27일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심리를 종결할 때 내리는 처분으로 위헌 심판 청구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3년 9개월 만, 한·일 위안부 합의 4년을 하루 앞두고 나온 결정이다.

헌재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이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 위헌 확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절차와 형식 및 실질에 있어 구체적 권리·의무의 창설이 인정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비구속적 합의의 경우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할 것이므로 이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심판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던 당시 양국 합의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 등 법적 권한이 침해받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 봤다.

특히 헌재는 “심판 대상 합의는 외교적 협의 과정에서의 정치적 합의이며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일 양국 간 협력 관계의 지속을 위한 외교 정책적 판단이라,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정치 영역에 속한다”고 규정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지난 8월 14일 서울 중구 남산의 조선신궁터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에서 제막된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헌법소원 제기 3년 9개월 만의 결론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인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합의 내용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는 문제 삼지 않기로 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이들은 “한일 정부가 맺은 합의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외교적으로 보호받을 권리, 재산권 등을 침해당했을 뿐만 아니라 합의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들이 완전히 배제돼 알 권리도 침해받았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합의 이듬해 3월 피해 할머니들을 대리해 “피해자가 철저히 배제되고 일본 정부에게 제대로 법적 책임도 묻지 못한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와 관련 “일반적인 조약이 서면의 형식으로 체결되는 것과 달리 이 사건 합의는 구두 형식의 합의이고 표제로 대한민국은 `기자회견`, 일본은 `기자발표`(記者發表)라는 용어를 사용해 일반적 조약의 표제와는 다른 명칭을 붙였으며 구두 발표의 표현과 홈페이지에 게재된 발표문의 표현조차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다”며 “이 사건 합의는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의 동의 등 헌법상의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두 합의에 법적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위헌 심판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조약이 아니라 외교적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며 지난해 6월 청구를 각하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외교부는 이날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27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 선고 관련 뉴스를 시청한 후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사망 피해자에겐 `소송 절차 종료` 선언

이와 함께 헌재는 사망한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심판절차는 청구인의 사망으로 종료됐다고 판단했다. 심판청구 이후 사망했고 상속인들은 심판절차의 수계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동준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은 헌재의 각하 결정에 대해 “배상 청구권에 관한 분쟁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헌법상 작위 의무가 있음을 이미 헌재가 확인해준 바 있어 우리 정부가 자기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는 부작위 그리고 그 이행 과정에서 합의문 발표로 일본 정부가 더 이상 협상에 이르지 않는 상황을 초래함으로서 장래 의무 이행자체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적극적으로 의무를 회피해 현재에 이르렀다”면서 “어르신들이 받았던 상처들을 어루만질 기회였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헌재 판단은 2011년 헌재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부작위)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두 번째 결정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작년 11월 양국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출연금을 바탕으로 세운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날 헌재의 결정을 앞두고 양국 간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헌재 선고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 소송 동향에 관한 언급은 피하겠다”고 전제하면서도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의 재산 청구권 문제는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2015년 한일 간 합의에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양국이 확인했다”면서 “한국 측에 계속해서 한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확실하게 요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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