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매우 엄격한 가상자산 거래소 진입규제를 갖추고 있다. 일정 요건을 갖춘 곳만 영업할 수 있도록 한 ‘가상자산 사업자(VASP) 신고제’가 그것이다. 2021년 9월 특정금융정보법을 개정해 도입했다. 명칭은 신고제지만 금융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하므로 사실상 ‘라이선스제’에 가깝다. 신고 요건에 벗어난 행위를 하면 신고를 ‘직권 말소’해 시장에서 퇴출하는 사후 규제도 가능하다. 법정화폐(원화)로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은행실명확인계좌를 확보하게 해서 은행을 통한 통제 구조까지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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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해외에서 마진거래, 파생상품 거래, 오더북(거래 주문 장부) 공유로 성장한 바이낸스라도 한국에서 금융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인수한 고팍스를 마음대로 운영할 순 없다. 당국이 허용하지 않은 행위로 라이선스를 박탈당하면 국내 시장에서 퇴출되고 고팍스를 인수하는 데 쓴 돈도 날려버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가 큰 바이낸스와 고팍스 간 오더북 공유도 따져보면 금융당국 허가 없인 불가능하다. 관련법에 오더북을 공유하려면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승인을 받도록 돼 있고, 승인을 받지 않고 오더북을 연동하면 라이선스가 박탈된다.
금융당국은 바이낸스가 고팍스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을 경우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고팍스의 등기임원 변경 신고 심사를 하면서 지나치게 바이낸스의 영향을 우려하는 모습이 의아하다. FIU는 변경 신고를 접수하고 45일 이내인 지난 19일까지 심사 결과를 통지했어야 하지만, 서류 보완 등을 요청하며 심사 기간을 연장했다. 지금까지 등기임원 변경에 따른 신고는 일주일 이내에 처리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 공룡인 바이낸스가 들어오는 데 검증을 대충할 순 없다. 가상자산 시장 리스크가 금융시장은 물론 사회 전반의 안정성을 흔드는 사건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바이낸스의 미국에서의 행위에 대해 미등록파생상품거래소 운영 등의 혐으로 기소한 것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기소가 과거 2021년까지 행위에 대한 것이고 한국에 전이될 수 있는 위험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지만, 바이낸스 한국진출을 허용해야 하는 금융당국 입장에선 ‘찝찝함’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민간 기업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신고를 접수했는데, 금융 당국이 합리적인 설명 없이 수리 여부 결정을 무한정 지연시켜선 안 된다. 괜히 공무원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 절차 마무리만 기다리고 있는 고파이 이용자들도 고려해야 한다. 고파이에 묶여 있는 이용자 자금이 566억이나 된다. 바이낸스는 인수가 마무리되면 고파이 이용자의 원금과 이자 전액을 지급할 예정이다. “나라가 구제해 줄 것도 아닌데 방해는 말라”는 게 금융 소비자인 고파이 이용자들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