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서 최근 무역 전쟁을 둘러싼 미국의 태도가 단순한 ‘관세 부과’나 무역 불균형 바로 잡기가 아니라 중국을 글로벌 사회에서 봉쇄하기 위한 것이란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역시 강경한 태도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주 끝난 중국 전·현직 지도부들의 회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이 같은 의견이 제시됐고 공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를 비롯해 중국 공산당들이 여름철 휴가를 겸해 베이징 동쪽 베이다이허 휴양지에 모여 국정과 향후 비전을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다. 올해는 미·중 무역전쟁 대응 방향이 주로논의됐다.
당초 미·중 무역전쟁의 책임이 시 주석의 대미 강경론과 중국몽(中國夢)에 있는 만큼, 시 주석의 1인 체제 등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회의 분위기는 시 주석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게 SCMP의 분석이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중국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며 자신 있고 굳건한 모습을 지켜야 할 것”이라며 “무역전쟁 초기 단계에서 너무 많은 양보를 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더욱 도발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은 최근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 10일 “미국의 무역전쟁은 단순히 무역적자에 관한 것이 아니며 훨씬 넓은 영역에서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속적인 개입과 봉쇄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12일에서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결연하게 맞서 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 지도부들은 대만 독립에 힘을 실어주는 미국에 대해 선을 그으며 양안 문제 만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고 대만여행법을 통과시켰다. 이어 이달엔 차이잉원 총통이 중남미 방문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자 대만 국가원수 자격으로 차이 총통이 연설을 하는 것마저 허용하며 미중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대만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 지도부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서명하며 미국이 무역전쟁을 넘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고 판단하는 모습이다.
다만 중국 지도부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만큼, 미·중 무역 협상 타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왕셔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이 미국 측 요청으로 방미해 22~23일 양일간 데이비드 말파스 미국 재무부 차관과 무역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2~3개월 만에 무역 협상이 열리는 만큼 글로벌 투자자들의 기대가 커졌다. 적어도 오는 11월 30일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갈등을 풀 수 있도록 실마리라도 찾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석이 너무 낙관적이며 양국의 정치 지형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무역 전문 변호사인 클레어 리드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확실한 승리 선언을 할 수 있을 때만 무역전쟁을 멈출 것이며 시주석 입장에선 미국에 대한 항복 선언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국의 골이 더 깊어질 경우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청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은 실질적인 냉전 상태에 있다”며 “무역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며 특히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